입력 : 2026.04.25 06:00
홍콩, 국제 주거 구매력 지수…올해도 1위
세금 대신 토지 매각으로 재정 유지
국가보안법 이후 인구·자본 이탈 본격화
세금 대신 토지 매각으로 재정 유지
국가보안법 이후 인구·자본 이탈 본격화
[땅집고] 홍콩 미드레벨 웨스트에 위치한 고급 주거단지 ‘더 레거시(The Legacy)’가 올해 1월에 8억8000만 홍콩달러, 한화로 약 1540억원에 거래됐다. 이곳은 복층 구조의 아파트로 홍콩 주거용 단일 아파트 역사상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올해 국제 주거 구매력 지수(Demographia International Housing Affordability)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은 14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도시로 선정되며 올해에도 뉴욕, 런던, 싱가포르를 제쳤다. 홍콩의 PIR(중위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수)은 18.8~20.0 수준이다. 평범한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약 19년이 걸려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최대 규모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인 ‘부동산 스터디’에서 한 누리꾼은 “홍콩 몽콕 중심지 기준으로 방 2칸 아파트가 5억~7억원 수준”이라며 현지 시세를 공유했다. 소형 주택임에도 가격 부담이 상당하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홍콩 집값은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고금리와 중국 경기 둔화 영향으로 2021년 고점 이후 약 20~30% 하락했다. 지난해 기준 주택 가격은 2015년 초 수준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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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대신 토지 장사…홍콩 성장의 구조
홍콩은 대표적인 저세율 경제다. 최고 소득세율이 약 15% 수준에 불과하고, 부가가치세·양도소득세·상속세도 없다. 그럼에도 도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특한 재정 구조가 있다.
홍콩 정부는 모든 토지를 소유한 뒤 매년 극히 일부만 시장에 공급한다. 이른바 토지 경매 시스템이다. 공급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면서 개발업자 간 경쟁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높은 가격에 토지를 매각한다.
이렇게 확보한 토지 수입은 한때 연간 약 28조원에 달했다. 사실상 세금 대신 땅을 팔아 재정을 유지해온 셈이다. 그러나 이 구조는 곧바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중산층 아파트 평균 면적이 8평 남짓에 불과하고, 창문 없는 쪽방이 수억원에 거래되는 등 주거 환경은 극단적으로 악화됐다.
홍콩은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토지 공급을 제한해도 정책 저항이 제한적이었다. 동시에 자본 이동의 자유, 법치주의, 사법 독립은 유지되면서 투자 매력은 유지됐다. 이 안에서 홍콩은 글로벌 자본을 끌어들였다. 특히 중국 부유층에게는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 금고 역할을 하며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그러나 2019년 대규모 시위와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이 균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표현의 자유와 제도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고학력·고소득 인구의 해외 이주가 본격화됐다. 부동산 시장에도 직격탄이 됐다. 주택 가격은 고점 대비 약 25% 하락했고, 오피스 임대료 역시 30% 이상 떨어졌다. 미분양 물량도 빠르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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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 냉각 vs 임대 과열
현재 홍콩 부동산 시장은 매매와 임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매매시장은 투자 수요 위축과 자산가 이탈로 약세를 보이는 반면, 중저가 임대 시장은 오히려 과열이다. 중국 본토에서 유입된 유학생과 가족 수요가 급증하면서 임차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홍콩으로 이동하는 중산층 가구까지 더해지며 임대 수요를 밀어 올리고 있다.
문제는 재정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토지 매각 수입이 급감하면서 홍콩 정부는 재정 적자에 직면했다. 한때 28조원에 달하던 토지 수입은 최근 3조원 수준으로 줄었고, 재정 적자는 10조원대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공무원 임금 동결, 토지 매각 축소, 세금 인상 등 긴축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올리면 ‘저세율 도시’라는 경쟁력이 약화되고, 복지를 줄이면 도시 매력 자체가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다만, 구조적 한계는 여전하다. 제조업 비중이 1% 수준에 불과해 산업 기반이 취약하고,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 도시화’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홍콩의 미래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 /ks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