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4.25 06:00
연령·성별 조건 내건 ‘선별 임대’ 늘어
62주 연속 오른 전세금
임대인 우위 당분간 지속
62주 연속 오른 전세금
임대인 우위 당분간 지속
[땅집고] “40대 이상은 세입자로 안 받는다고요?”
최근 수도권 전세 시장에서 매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집주인이 세입자의 나이나 성별, 직업 등을 따져 골라 받는 이른바 ‘세입자 필터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대인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 단순한 가격 협상을 넘어 사적인 조건까지 내걸며 세입자를 가려내는 양상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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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으면 집 망가져” 젊은 신혼부부 찾는 집주인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와 온라인 매물 사이트에는 황당한 입주 조건이 붙은 매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실제 수도권의 한 아파트 전세 매물은 2억 4000만 원에 나오면서 상세 설명에 ‘1990년생 이전의 신혼부부만 가능한 집’이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사실상 30대 중반 이하의 젊은 층으로 입주 자격을 제한한 것이다.
집주인들이 이토록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이른바 ‘집 관리’ 때문이다. 내부 수리를 마친 집일수록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가구보다 상대적으로 짐이 적고 집을 깨끗하게 유지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한다. 특히 맞벌이 신혼부부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 사용감이 적을 것이라는 계산도 한몫한다.
성별을 제한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경기 과천시의 한 전용 84㎡ 아파트에서는 ‘여학생, 여자 직장인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은 월세 매물이 나왔다. 해당 매물은 방 한 칸만 세를 놓은 형태인데, 집주인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특성상 동성 세입자만 받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생활 편의와 안전 등을 이유로 여성 임차인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학가 원룸촌의 전유물이었던 성별 제한이 이제는 일반 아파트 단지로까지 번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기피하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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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세 매물 1년 새 ‘반토막’…선택권 잃은 세입자
이러한 기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극심한 공급 부족에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4월 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 5307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인 2만 7745건과 비교하면 약 45% 급감한 수치다. 불과 1년 사이 세입자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절반이 시장에서 증발했다.
자치구별 매물 실종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성북구가 1년 전보다 87.65%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으며 중랑구(-87.18%), 노원구(-84.29%), 관악구(-82.35%), 금천구(-81.25%) 등 5개 구에서 매물이 80% 이상 급감했다.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다 보니 집주인이 내거는 무리한 조건에도 세입자는 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매물 부족은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금은 지난해 2월 이후 62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매물이 나오기 무섭게 높은 가격에 거래되다 보니 집주인들은 이왕이면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고르며 임대인 우위 시장의 지위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여파로 빌라 수요가 아파트로 쏠린 데다 신규 입주 물량까지 줄어들면서 임대인 우위 시장이 공고해졌다고 분석한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눈치를 보며 사실상 ‘면접’을 봐야 하는 주거 환경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다주택자 규제와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으로 전월세 물량이 줄어든 데다 신규 공급까지 부족한 상황에서 규제가 겹치며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전월세 가격 상승과 전세난이 서울을 넘어 수도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