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4.26 06:00
[땅집고] “한예종을 서울에서 광주로 옮기자고요? 이건 ‘광주 살리기’가 아니라 ‘한예종 죽이기’나 다름 없는 짓 아닌가요?”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마다 표심을 얻기 위해 여러 공약을 내걸고 있는 가운데,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를 광주광역시로 옮기자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한예종 캠퍼스 내부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때문에 이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오긴 했지만, 학교 특성을 고려하면 인근 지역이나 수도권이 아니라 광주광역시로 옮기는 구상안은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분위기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22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접수됐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정준호 의원( 광주 북구 갑)을 대표로 같은 당 소속 의원들 총 11명이 함께 발의한 안건이다.
정 의원은 제안 이유로 “현재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가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돼있어 지역 간 문화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과 문화예술의 지역 확산을 위해 국립 예술교육기관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법안을 마련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법적지위를 강화하고 예술전문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소재지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두어 국가균형 예술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법안에는 석 · 박사 학위 과정인 대학원을 설치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교육부 관할 일반 대학들과 달리 한예종은 문체부 관할 ‘ 각종 학교 ’ 로 분류돼 석박사 학위 과정 개설이 불가능하다.
한예종은 1993년 서울에 설립된 국립 특수목적 예술교육기관이다. 현재 음악원·무용원으로 구성하는 서초구 서초동 캠퍼스와, 학교본부 및 연극원·영상원·미술원·전통예술원이 있는 성북구 석관동 캠퍼스로 두 곳으로 나눠져 있다. 이 중 본관격인 석관동 캠퍼스 내부에 자리잡고 있던 조선 왕릉인 ‘의릉’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이전 필요성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세계문화유산 보존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 등 중앙정부 간 협의가 필요하지만, ▲서울 송파구 방이동 ▲경기 하남시 감일지구 ▲경기 과천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과천분원부지 등 수도권 지자체들이 한예종을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런데 오는 6월 선거를 두고 정치권에서 돌연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를 광주광역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발의안이 등록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광주가 문화·예술 중심 도시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지역인 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인프라를 갖춘 만큼 한예종을 품기에 적합한 지역이라는 것.
올해 2월 한예종 광주 이전을 처음으로 주장한 인물이자 해당 발의안 대표자인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남·광주는 예로부터 예술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 예향으로 불리며 뛰어난 예술가들을 배출해 왔다”면서 “한예종 지방 이전을 통해 국가 예술교육의 균형발전과 지역 문화예술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민변 출신 변호사인 정다은 더불어민주당 광주 북구청장 예비후보 역시 한예종을 광주로 옮겨야 한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예비후보 자리에 오르면서 5대 목표 및 15대 핵심 과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한예종·문체부 등 2차 공공기관을 광주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
갑자기 등장한 한예종 광주 이전설을 접한 국민들 의견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먼저 지방에서도 양질의 예술을 향유하도록 하는 취지 자체는 좋다는 평가다. 하지만 한예종 특성상 학생들 중 예술가·연예인 지망생이 많아 문화 인프라가 밀집한 수도권 입지가 더 낫지 않느냐는 우려가 함께 제기된다.
광주지역 출신 한예종 학생이라고 밝힌 A씨는 “한예종이 광주로 이전하면 입시생들은 한예종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서울대·연세대·한양대·홍대·중앙대를 선택할 것이고, 그러면 한예종은 지금의 위상을 잃고 그저 그런 지방예술대로 전락하게 된다”면서 “실효성 없는 공약은 광주 살리기가 아니라 한예종 죽이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오디션 보고, 드라마 찍고, 공연해야 하는 실습 위주의 바쁜 학교가 지방 광주에 가면 망하지 않겠느냐”, “미국 정부가 줄리어드 음대를 애리조나 사막으로 보내자고 하는 꼴”, “르네상스 시기 작곡가들도 돈 많이 주는 가문으로 상황따라 옮겨다녔는데, 어떤 교수님이 광주까지 내려가려고 하겠느냐”는 등 의견이 눈에 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