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4.19 06:00
[땅집고] “일본이 남기고 간 신사 기둥을 테니스장 땅 다지는데 쓰다니, 세상에서 제일 통쾌한 재활용이네요!”
대구시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은 ‘달성공원’이다. 대구 도심 한복판 입지인 만큼 접근성이 좋고, 공원 안에 사적지와 함께 동물원이 조성돼있어 대구시민이라면 어린 시절 달성공원으로 학교 현장학습이나 가족 소풍을 떠난 경험이 한 번 쯤은 있다.
‘달성’이라는 이름은 과거 대구지역에서 출범한 부족국가 ‘달구벌’이 축조한 토성인 달성에 따온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달성 토성이 국내 성곽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 2000년 이상 역사를 지닌 대구시 대표 랜드마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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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달성토성은 과거 일제강점기던 1894년부터 광복이 될 때까지 약 50년 동안 일본에 의해 무참히 훼손된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대구 달성토성 일대에 주둔시켰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큰 승리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국가 규모 측면에서 청나라 인구가 4억명에 달해, 4000만명에 불과했던 일본을 압도할 정도로 컸던 데다 국방비를 부담할 재정도 비교적 넉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청나라가 서구 열강으로부터 전수받은 신식 무기와 군함을 활용하면서 전투력 측면에서도 우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청일전쟁 결과, 예상을 뚫고 일본군이 승리를 거뒀다. 청나라 지배층들의 부정부패가 발목을 잡았던 것. 당시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서태후가 본인이 즐겨 먹던 과일을 운반하기 위해 군함을 과일 운반선으로 쓰고, 나라 예산을 별장을 짓는 데 낭비하면서 기강이 해이해진 것. 국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청나라 장교들과 고위관료들도 전쟁 승리에 신경쓰기 보다는 국방비와 군수물자를 빼돌려 개인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이렇게 청일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일본은 자축 기념으로 1906년 대구 달성토성에 ‘대구신사’를 세웠다. 석재 기둥 두 개를 수직으로 세우고, 이 기둥을 가로 두 줄로 연결해 마치 출입문처럼 만든 ‘토리이’ 모형이 핵심 시설이다.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이자 최고 권위를 갖는 아마테라스를 섬기는 신사로 자리잡았다. 당시 대구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달성토성 한복판에 딱 봐도 왜색이 짙은 대형 조형물이 들어서면서 대구지역 국민들에게 좌절감을 줬다.
해방 이후인 1946년, 대구시민들은 일제강점기를 청산하는 의미로 토리이를 본격 철거했다. 신사 전체 시설은 1966년 사라졌다.
재밌는 점은 철거된 토리이의 대형 기둥이 현재 달성공원 테니스장 부지를 편평하게 만드는 롤러로 재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인들이 섬기던 신사 일부를 한낱 평탄화 기구로 쓰고 있다는 근황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에게 통쾌함을 주는 분위기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일본 신사 기둥을 잘라서 다시 쓰다니 역시 대구는 상남자의 도시다”, “토리이 기둥이 둥글고 묵직해서 재활용하기 딱이긴 하다”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