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4.16 06:00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바꾼 부동산 지각변동> 1부 삼성 셔틀버스따라 움직이는 집값, 1600대 어디가나 봤더니
① 송파대로에 삼성맨들이 아침마다 줄을 서는 이유
① 송파대로에 삼성맨들이 아침마다 줄을 서는 이유
[땅집고] 15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정문 앞. 이른 아침부터 송파대로변 전봇대 아래에 30~40대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줄을 서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소도 아닌데 10분 만에 20명이 넘는 긴 줄이 생겼다. 목에는 푸른색 삼성전자 사원증이 걸려있는 ‘삼성인’들이 대열을 이뤘다. 잠시 후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로 향하는 대형 버스가 도착하자 이들은 익숙한 듯 몸을 실었다.
이날 화성캠퍼스로 출근하는 김호정(가명·37)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가락동 헬리오시티를 생애최초 자격으로 매입해 입주했다. 2024년 사내 커플로 결혼한 김 씨 부부는 당초 경기 성남시 분당구나 화성시 동탄신도시를 고민했지만, 미래 투자가치와 자녀 교육을 고려해 서울 입성을 선택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셔틀버스’였다.
김 씨는 “아파트 정문 바로 앞에서 셔틀을 타면 회사 문 앞까지 한 번에 간다”며 “최근 남편이 화성에서 평택캠퍼스로 발령이 났는데, 단지 앞에 평택행 셔틀 노선도 있어 출퇴근 환경에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촘촘한 셔틀 인프라가 거주지 이전의 제약을 없앤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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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매수 기준이 된 ‘직장 셔틀버스’
15일 업계와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화성·기흥 캠퍼스를 오가는 셔틀버스는 총 1600대가 넘는다. 수도권에만 1342대가 투입되며, 서울 시내에도 약 262대가 운영 중이다. 주목할 점은 서울 내 자치구 중 송파구의 운행 대수다. 송파구는 총 48대로 강남구(21대)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김 씨는 “한강 이북으로 가면 심리적 부담이 커져 사내 직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며 “동남권 중에서도 대단지 주거지가 몰린 잠실역부터 가락동, 문정동 등 송파대로 라인에 거주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자금력을 갖춘 50대 안팎은 잠실역 일대로, 30대는 가락·문정동 일대 아파트를 주로 매수하는 양상이다. 올해 1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잠실르엘(1865가구) 단지 앞에도 셔틀버스 노선이 깔렸다. 이 단지 33평형(전용 84㎡)은 지난 1월 48억원에 거래됐다. 최근 송파구 잠실역 주변 신축 아파트는 강남구 도곡동·대치동·개포동 집값보다 비싸다.
서울 서초구 양재역과 강남구 수서역은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의 핵심 요충지다. 양재역 10번 출구 인근 주차빌딩 1층은 사실상 ‘삼성전자 전용 터미널’이다. 새벽 5시 50분부터 기흥·화성행 버스를 타려는 직장인들이 대거 몰린다. 이곳은 노선 내 유일한 정차 지점이라 빈 차가 도착해 승객을 가득 태운 뒤 곧장 사업장으로 이동해 선호도가 높다. 양재역 인근엔 대규모 아파트가 적다. 대신 서초동, 반포동, 대치동 등에 거주하는 이들이 신분당선과 3호선을 타고 양재역으로 이동해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다.
수서역 일대도 주목할 만하다. 수서신동아, 수서삼익 등 구축 아파트들은 최근 평당 1억원을 돌파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 셔틀버스뿐 아니라 SRT 이용 시 회사의 교통비 지원(월 약 10만원 선)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임직원들 사이에서 공유되며 삼성인들에게 수서역은 서울의 끝자락이 아닌 회사로 통하는 ‘서울의 첫 관문’이 됐다. 최근 일대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배경에도 이 같은 수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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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성과급이 밀어 올린 서울 동남권·경기 남부 집값
부동산 업계에서 이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자본력에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3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증권가 전망이 나오면서 성과급 규모도 역대 최고 수준이 거론된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의 15%(약 45조원)가 성과급 재원으로 확정될 경우, 전체 임직원 1인당 평균 수령액은 3억6000만원에 달한다. 특히 반도체(DS) 부문 인력 7만7000여 명을 기준으로 하면 1인당 최대 5억8000만원까지 치솟는다. 성과급에 사내 대출까지 활용하면 고가 주택 매수도 어렵지 않다. 이씨는 “부부가 사내 커플이면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은 성과급으로 해결한다”며 “사내에서 공공연하게 반도체 업종에 종사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만난 게 최고의 재테크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이들은 대출 규제 영향이 적은 고소득 전문직 중심의 수요층이다. 성과급과 주식 보상으로 유동성이 풍부해 시장이 조정기에 들어서도 매수 여력이 유지된다. 서울 동남권과 경기 남부에서 생애 첫 주택 매수, 상급지 갈아타기 등 다양한 주거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는 배경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경기 남부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려는 성향이 짙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 가격은 결국 구매력을 가진 유효 수요층에 의해 결정된다”며 “반도체 산업군 종사자들은 부동산 시장을 낙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고, 당분간 액티브 바이어(유효 수요)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고 했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