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3.26 06:00
반포동 노후 재건축 단지…전세 매물 씨 말랐다
세입자마다 계약갱신청구권 쓰면서 풀리는 전세도 없어
재건축 이후 신사, 대치 노후 주택으로 이동할 수도
세입자마다 계약갱신청구권 쓰면서 풀리는 전세도 없어
재건축 이후 신사, 대치 노후 주택으로 이동할 수도
[땅집고] 지난 25일 오후 찾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지하철 9호선 신반포역부터 고속버스터미널역으로 이어지는 신반포로 대로를 따라 수많은 부동산 중개업소가 늘어서 있지만, 정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개인마다 책상 앞에 앉아 묵묵히 모니터를 응시하는 모습만 눈에 띈다. 유리창에 붙은 전세 매물 목록을 보니 대부분이 신축으로 보증금 15억원을 상회하는 고가 단지 위주였다. 반면 반포동 일대에서 전세 거래가 활발했던 10억원대 미만 구축 아파트 매물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 “보증금 10억 밑은 멸종”... 자취 감춘 ‘가성비’ 구축 전세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부촌(富村)으로 통하는 반포동에선 화려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대규모 새아파트 못지 않게, 재건축을 앞둔 낡은 아파트에 대한 전세 수요가 많았다.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차난이 심한 등 생활 불편이 적지 않지만 보증금이 7억~9억원대로 신축 대비 반값 수준으로 저렴해서다. 낮은 보증금으로 반포 생활권에 진입해 자녀 학군과 강남권 출퇴근 문제를 해결해온 수요자들이 이 일대 1970~1980년대 입주한 노후 아파트 전세 시장을 떠받쳐 온 셈이다.
하지만 현재 반포동 일대 노후 아파트 전세 매물은 씨가 마른 상태다. 1978년 입주한 총 1572가구 규모 신반포2차 중 나와 있는 전세 매물은 단 18건. 인근 신반포4차(1979년·1212가구)에서도 전세 등록된 물건이 22건으로 적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두 단지를 합해 총 2800여가구 중 전세 수요가 가장 많은 20~30평대 소형 전세 매물은 ‘0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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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호 미래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신반포2·4차 등 재건축 예정인 낡은 아파트에서 저렴한 가격에 전세로 살았던 세입자들이 계약 갱신권을 쓰거나 재계약하며 눌러앉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구축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으려는 집주인까지 사라지면서 매물이 말라버렸다”고 전했다.
◇ 갱신권에 묶이고 세금에 팔리고... 전세 거래절벽 심화
이 같은 구축 전세 실종에 대해 반포동 일대 공인중개사들은 “계약갱신청구권 부작용과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와 합해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활발하게 사용하면서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반포동 신축 아파트 전세 보증금 호가가 15억~20억 원대에 달할 정도로 오르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10억 원 미만 조건으로 계약했던 구축 임차인들이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하며 2년을 더 거주할 수 있는 갱신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 오는 5월 9일 종료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라는 정책적 시한까지 겹치며, 일부 단지에서는 기존 세입자들이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세금 부담을 피하려는 임대인들이 전세 계약을 갱신해 주는 대신 매도를 택하면서, 기존 임차인들이 퇴거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이 포착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명가 공인중개업소 박순애 대표는 “최근 매도인이 집을 팔기 위해 세입자에게 퇴거를 요구했으나, 인근 전셋값 상승으로 갈 곳이 없는 세입자와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다”며 “매수자가 세입자에게 약 5000만 원의 이사비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퇴거 합의를 끌어내며 계약이 성사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과 전공지도교수는 “앞으로 반포동 일대 노후 단지마다 재건축을 마치고 새아파트로 탈바꿈하면 전세가가 지금보다 2~3배 이상으로 뛸 수 있다”며 “그러면 반포동 구축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세입자들은 비슷한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기존 가격대와 유사한 인근 신사동이나 대치동 일대 주택가로 옮겨 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min0212s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