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3.24 06:00
‘청약통장’ 깨고 삼전·하이닉스 산다
청약통장 가입자 84만명 이탈
가점 낮은 젊은층 먼저 떠났다
청약통장 가입자 84만명 이탈
가점 낮은 젊은층 먼저 떠났다
[땅집고] “회사 후배는 주식으로 대박 나서 결혼 자금 마련했다는데, 청약통장에 묶인 돈이 너무 아까워서 해지하려고 해요”
서울 광화문의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37)씨는 최근 10년 넘게 부어온 청약통장을 해지했다. 통장에 묶여 있던 3000만원은 곧장 해외 주식 계좌로 향했다. 박 씨는 “옆자리 동료는 주식 대박으로 결혼 자금을 마련했다는데, 청약통장을 들고 있는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며 “코스피가 6000선을 넘나드는 마당에 당첨 확률도 희박한 청약에 목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때 내 집 마련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던 청약통장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고(高) 분양가 논란과 주식 시장의 광풍이 맞물리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는 청약 통장 무용론이 확산 중이다. 일각에선 주거 사다리를 포기하는 대신 금융시장에 베팅하는 일종의 고위험 선택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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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6000 시대…청약통장 84만명 이탈
실제 청약통장 가입자는 빠르게 줄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체 가입자는 2024년 1월 2697만여 명에서 올해 1월 2613만여 명으로 약 84만 명 감소했다. 특히 가점이 낮은 젊은층의 이탈이 두드러진다.
국내 최대 부동산 커뮤니티 ‘부동산스터디’에서도 “청약통장을 유지할 이유가 있느냐”, “차라리 주식이 낫다”는 글이 잇따른다. 투자 방향도 뚜렷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대표 대형주부터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술주, ETF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청약의 매력이 급격히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다. 서울 주요 아파트 분양가는 이미 10억원을 훌쩍 넘어섰고,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5억원 수준까지 올라왔다. 당첨 자체도 로또급 확률인데, 당첨 이후가 더 문제다. 대출 규제에 막혀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청약은 ‘그림의 떡’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진다. “당첨돼도 돈이 없어 포기했다”, “청약 넣을 의미가 없다”는 글들이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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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사다리 대신 주식에 베팅
여기에 정부의 ‘머니 무브’ 기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본을 금융시장으로 유도하는 흐름 속에서 젊은층은 부동산 대신 주식과 코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집을 사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리기보다, 당장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시장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청약통장 해지를 단순한 합리적 선택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청약통장은 가입 기간과 무주택 기간이 길수록 가점이 쌓이는데, 통장을 해지하는 순간 그 시간은 모두 사라진다. 나중에 다시 가입해도 시간의 가치는 돈으로 되돌릴 수 없다. 결국 지금의 해약 선택이 미래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청약 시장을 떠난 자리는 자연스럽게 현금 동원력이 높은 수요자들이 채울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토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연령은 평균 46.4세까지 올라섰다. 과거 30~40대 초반에 가능했던 ‘첫 집’이 이제는 40대 중반이 돼서야 가능한 일이 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라면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분양가 자체도 비싸다보니 청약통장 무용론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상황같다”며, “청약을 포기한 청년층이 전세나 월세 시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안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결국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 안정과 정책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ks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