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2.25 10:23 | 수정 : 2026.02.25 11:33
정부 실거주 압박에 문 닫는 가정어린이집
부동산 규제가 부순 ‘아이들의 울타리’
부동산 규제가 부순 ‘아이들의 울타리’
[땅집고] “입소 일주일 남겨두고 폐원이라니요.”
수도권 한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맞벌이 직장인 35살 김모씨는 최근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아이의 가정어린이집 입소가 확정돼 서류와 준비물을 모두 챙겼지만, 입소 일주일을 앞두고 돌연 운영 종료 안내를 받은 것이다. 원장은 “대표자의 결정으로 이달 말까지만 운영한다”며 사과했다. 김씨는 이미 다른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취소한 상태였다. 단지 바로 옆 국공립 어린이집도 배정받을 수 있었지만, 동선이 편한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을 선택한 것이 화근이 됐다. A씨는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며 “이렇게 갑자기 보육 공백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례가 최근 수도권 신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잇따르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필수 보육 인프라인 아파트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이 신학기 직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표자 결정’이나 ‘운영상 어려움’이지만, 연쇄 폐원의 배후엔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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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원장님 방 빼세요”
아파트 단지 내 1층 등에서 운영하는 가정어린이집은 원장이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빌려 운영하는 ‘임차 형태’가 대다수다. 통상 법적 대표자는 집주인이고, 원장은 세입자인 구조다. 문제는 정부가 다주택자를 규제 대상으로 규정하고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면서 시작됐다.
집주인이 해당 주택을 매도하거나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거주를 하겠다고 결정할 경우, 임차인인 원장은 사실상 퇴거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은 다른 상가처럼 간단히 이전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시설 기준과 인허가 절차, 학부모 동의 등을 새로 거쳐야 한다. 결국 개학 직전 ‘긴급 폐원’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다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이 커지고, 양도세 비과세나 감면 요건으로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이런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문제는 피해가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맞벌이 가정에서 어린이집 입소 취소는 단순한 일정 변경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 조정, 조부모 돌봄 여부, 육아휴직 계획까지 전면 수정해야 한다. 특히 신생아 특례대출이나 특별공급으로 신혼부부 입주가 많은 단지에서는 보육 수요가 집중돼 이 같은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진다. 국공립 대기 순번을 포기하고 단지 내 어린이집을 선택했다가 순번이 뒤로 밀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
◇주거형 보육·교육 인프라 줄폐원 위기
영향은 어린이집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세를 얻어 운영되던 공부방, 피아노 교습소, 공방, 홈트레이닝 스튜디오 등 이른바 ‘주거형 소상공인’들도 비슷한 구조다. 집주인이 실거주를 선택하면 이들 역시 계약 종료 압박을 받는다. 단지 주민 입장에서는 보육과 교육, 문화 인프라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셈이다. 주택을 철저히 ‘주거용’으로만 규정한 정책이 지역 커뮤니티 기능까지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부동산 규제의 취지는 시장 안정과 투기 억제다. 그러나 정책의 파급은 주택 거래를 넘어 생활 인프라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영유아 보육은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다. 어린이집으로 등록된 주택에 대해 최소한 학기 중 계약 안정성을 보장하는 장치나, 실거주 요건 적용 시 일정한 예외를 두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집은 주거용’이라고 강조하지만, 시장에서는 주거용이 아닌 ‘인프라’로서의 공간도 분명히 필요하다”며 “부동산 규제에만 집착하다보니 이런 부작용에 대해선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