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2.23 06:00
라임 사태 1심 판결 “신한투자증권 공동 책임”
항소 계획에 일각에서는 “시간끌기” 비판 나와
항소 계획에 일각에서는 “시간끌기” 비판 나와
[땅집고] 신한투자증권이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서 발행어음 사업권이라는 강력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지만, 정작 시장의 근간인 ‘신뢰’는 벼랑 끝에 몰렸다. 최근 라임 사태와 관련해 법원이 단순 조력자를 넘어선 ‘공범’으로 규정했으나, 신한투자증권은 시간끌기로 대응하며 버티기에 돌입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5부는 지난 5일, 하나은행이 라임자산운용과 신한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라임 펀드 관련 파산채권 확정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신한투자증권과 임우일 전 PBS사업본부장이 하나은행 측에 327억9197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라임 사태는 2019년 10월 당시 국내 헤지펀드 1위였던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건이다.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기업들의 전환사채(CB) 등을 편법으로 거래하며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조6000억원대 대규모 환매 중단으로 4000명 넘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이번 판결이 뼈아픈 이유는 재판부가 신한투자증권의 역할을 ‘공동불법행위자’로 못박았기 때문이다. 그간 신한투자증권은 TRS(총수익스와프) 계약이 단순한 금융 서비스라고 주장해왔으나, 법원은 운용사와 손잡고 부실을 은폐하거나 방치한 실질적인 공범으로 판단했다. 사법부가 사실상 부정거래의 조력자라는 낙인을 찍은 셈이다.
신한투자증권 측은 1심 판결에 항소하겠다는 계획이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나 법리적으로 다룰 여지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신한투자증권이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발행어음(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초대형 IB라는 점이다. 발행어음은 자본시장법상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초대형 IB가 자기 신용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의 금융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증권사 중 별도 심사를 통과해야 발행할 수 있고, 자기자본의 2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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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투자증권의 경우 자기자본 약 5조7300억원의 2배에 달하는 11조원 이상을 조달할 수 있다. 은행 대출, 채권 발행이 아니라 직접 어음을 찍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메리트라는 평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발행어음 사업의 핵심은 고객이 해당 증권사의 이름을 믿고 돈을 맡기는 것”이라며 “사법부로부터 불법 행위 공범으로 지목된 금융사가 국민의 돈을 직접 굴리는 사업권을 행사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하냐는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한투자증권의 패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우리은행과의 소송에서 약 453억원, 미래에셋증권과 소송에서 약 90억원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바 있다. 이번 판결까지 합치면 민사 1심 등에서 인정된 누적 배상액만 870억원을 넘긴다.
시장에서는 신한투자증권이 이번 판결을 단순히 ‘지나간 소송 비용’이나 ‘법리적 다툼’으로 치부하며 항소를 통한 시간 끌기에만 급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태도가 지속될 경우 초대형 IB로서의 영업 기반인 ‘고객의 믿음’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까지 뒤따른다.
취임 이후 리스크 관리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이선훈 대표 체제에 대한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2025년 1월 취임한 이 대표는 신년사를 통해 ‘잘못된 관행 제거’를 통해 내부통제 역량 강화를 천명한 바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2019년 라인 사태 이후 3번이나 대표이사 교체가 이뤄졌다. 매번 금융사고, 내부통제 부실 이슈가 불거지면서 연임에 실패하고 낙마했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발행어음 사업자 인가를 이끌어냈지만, 라인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주요 과제라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순히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넘어,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근본적인 내부통제 체계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경영진이 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raul164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