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1.26 06:00
세금은 안 건드린다더니… 연초부터 증세 시그널
대통령·정책실장 다른 신호… 세제 방향 혼선
정책 일관성 흔들리자 시장 불안만 키워
대통령·정책실장 다른 신호… 세제 방향 혼선
정책 일관성 흔들리자 시장 불안만 키워
[땅집고] 부동산 증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일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연초 이후 증세를 ‘최후의 수단’으로 언급하며 정책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출 규제와 공급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결국 문재인 정부 시절의 해법이었던 ‘세금 규제’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실수요자 보호를 전제로 내세웠던 기존 원칙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시니어타운 개발, 절대 실패하지 않는 ‘올인원 실무 과정’ 신청하기>>
◇文정부 답습 않겠다더니…입장 바꾼 대통령
세금 규제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강도 높은 세금 규제를 시행했지만 집값 상승을 막지 못했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이 대통령은 앞서 한 경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주택 보유를 막을 수는 없다”며 “부동산 세금은 손댈 때마다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가급적 손대지 않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기류가 달라졌다. 이 대통령은 “세금은 규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필요해진다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며 여지를 남겼다.
이 대통령은 이달 23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제도 연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는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낮춰 매물 출회를 유도하자는 취지로 한시 도입된 제도로 올해 5월 9일 일몰을 앞두고 있었다. 거래 경색이 이어지자 시장 일각에서는 거래 활성화를 위해 한시적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대통령이 직접 연장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사실상 폐지 수순이 공식화됐다.
장기보유특별공제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최근 “주거 목적이 아닌 투자·투기용 주택에 대해 장기 보유를 이유로 세금 감면을 해주는 것은 이상하다”며 “매물을 잠그고 투기를 권장하는 제도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당장 제도를 손보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나 장특공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욱 주목된다. 당시 민주당은 1세대 1주택자에게 일괄 적용되던 장특공 가운데 거주기간에 따른 공제율은 유지하되 보유기간 공제율을 양도차익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구체적으로는 양도차익이 5억원 미만일 경우 기존 40% 공제율을 유지하되, 5억~10억원 미만은 30%, 10억~20억원 미만은 20%, 20억원 이상은 10%로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식이다. 고가주택일수록 장기보유에 따른 세제 혜택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방안은 당시 고가주택에 대한 사실상 양도세 중과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추진이 중단됐다. 최근 김용범 정책실장의 발언을 계기로 한때 접업던 이 구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김 정책실장은 고가 1주택 보유세 인상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보유세와 양도세 과세표준 구간을 세분화하고 누진율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택 공급 늘리겠다면서 다주택자 규제
정부가 획기적으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 실행 가능성에는 의문이 따른다. 단기간에 공급 효과를 내려면 다주택자의 역할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책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파트 공급은 토지 확보와 인허가, 착공과 준공까지 최소 6~10년이 걸린다. 현 정부 임기 안에 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물량을 내놓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면 1년 내 공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유형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지만, 시세 상승 여력이 낮아 실수요자 중심의 매입은 제한적이다.
결국 다세대·다가구 주택 공급은 임대사업을 목적으로 한 다주택자의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이후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면서 해당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고, 도심 내 임대주택 공급도 함께 줄어들었다. 전세 시장 불안과 전세사기 확산이 이 과정에서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 주요국은 다주택자를 투기 세력이 아닌 임대주택 공급 주체로 분류하고, 임대시장 활성화 관점에서 제도와 세제를 설계한다. 이런 흐름과 비교하면 최근 대통령의 다주택자 관련 발언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인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모습에 가깝다. 업계에서 “이재명 정부에서도 주택 공급은 물 건너 갔다”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여당 엇박자…대통령 본심은
문제는 정책 메시지의 혼선이다. 이 대통령은 실거주와 투자용 주택을 구분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책 실무를 총괄하는 정책실장을 비롯한 여당에서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누진 과세 강화를 언급하며 결이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부동산 세제 방향을 두고 엇박자가 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다르게 가겠다고 했던 정부가 결국 문재인 정부와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세금 정책은 한 번 방향을 틀면 되돌리기 어렵고 정책 신뢰가 무너질 경우 실수요자와 중산층의 불안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세제 전문가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은 정책 강도보다 정책 일관성에서 나온다”면서 “정부의 약속이 흔들리면 정부가 언제든 증세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불신이 커지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실수요자 보호 원칙 역시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