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6.01.23 06:00
CEO는 미담제조기, 주가는 반토막
면세점 고가 입찰 후유증
‘승자의 저주’ 결말은 1900억 위약금
면세점 고가 입찰 후유증
‘승자의 저주’ 결말은 1900억 위약금
[땅집고] “주가와 실적에 관해서 저를 포함한 모든 임직원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같은 발언을 꺼낼 당시 회사 안팎의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직전 해인 2024년도 호텔신라 매출은 3조6000억원, 영업이익은 91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직전 해(2023년)와 비교하면 27.5% 급감했다. 게다가 주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오히려 하락세를 이어가며 역사적 저점 수준에 머물렀다. 이에 시장에서도 실적 회복 기대보다 구조적 리스크에 우려가 나왔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호텔신라 주가 흐름은 좀처럼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고, 실적 역시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부진은 2010년 연말에 오빠인 이재용 사장과 동시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등기임원 선임에서는 이부진이 5년 이상 빨랐다. 이건희 회장이 2012년 CES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당시 직책)의 손을 잡고 삼성 부스를 둘러보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전자, 중공업, 건설-유통 등으로 그룹을 분할해서 여동생들도 본격적으로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재계에 퍼졌다. 한때 삼성전자의 실적부진이 지속되면서 이부진 사장이 이재용 회장보다 경영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나왔다. 여러 선행이 알려지면서 통근 미담제조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2014년 80대 택시 기사가 호텔신라의 주 출입구 회전문을 들이받아 호텔 직원과 투숙객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기사는 4억원이 넘는 금액을 변상해야 했지만, 이 사장은 돈을 받지 않고 오히려 소고기, 케이크를 대접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코스피 5000시대에도 호텔신라는 주가가 반토막 나면서 개미투자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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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억 위약금 물고 인천공항 탈출
지난해 호텔신라는 면세사업 축소와 호텔 본업 경쟁력 강화라는 전략적 전환을 추진했다. 재무구조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온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결정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이자 동시에 과거 경영 판단 미스의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호텔신라의 부진은 2023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낙관론이 확산되던 시기 호텔신라는 인천공항 DF1 권역에 경쟁사 대비 168%에 달하는 고가 투찰률을 제시하며 사업권을 따냈다. 당시 공격적인 입찰은 시장 회복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경쟁 심리가 결합된 결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선택은 곧 ‘승자의 저주’로 돌아왔다. 면세 수요 회복은 예상보다 더뎠고, 이용객 수에 연동된 높은 임차료는 고정비 부담으로 작용했다. 적자가 누적되자 호텔신라는 2025년 임대료 40% 감액을 요구하며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민사조정까지 나섰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사업권 획득 2년 만인 지난해 9월, 호텔신라는 약 1900억원의 위약금을 감수하고 DF1 권역 철수를 결정했다. 같은 시기 신세계면세점도 인접 권역(DF2)에서 철수 결정을 내렸다. 호텔신라는 당초 2033년 6월까지 해당 권역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신라면세점은 이달 마카오 국제공항점 운영을 종료한다. 계약 만료에 따른 결정으로, 이로써 해외 공항 면세점은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과 홍콩 첵랍콕국제공항 두 곳만 남게 됐다.
2020년~2022년 3조원을 웃돌던 신라호텔 시가총액은 1조7000억원까지 떨어졌다. 경영진의 실책이 주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시장의 냉혹한 평가가 반영된 것이다.
◇리스크 줄이는 호텔 위탁운영 집중
그나마 다행인 건 호텔신라 전체 영업이익은 2025년 들어 개선 흐름을 보였다. 1분기 영업손실 25억원을 기록한 이후 2분기 87억원, 3분기 114억원으로 두 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그런데 3분기 면세점 부문만 놓고 보면 10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면세점 사업은 5개 분기 연속 적자다. 게다가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늘었지만 1500억대의 대규모 순손실이 발생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 철수로 발생한 위약금이 반영된 결과다.
호텔신라는 향후 성장 동력으로 호텔 브랜드의 글로벌 확장을 내세우고 있다. 다음 달 2일 중국 시안에 ‘신라모노그램’을 오픈할 예정이다. 신라모노그램은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 ‘더 신라’와 비즈니스 호텔 ‘신라스테이’의 중간급 브랜드로, 2020년 베트남 다낭에서 첫 선을 보인 뒤 강릉에 이어 세 번째 지점이다. 시안 지점은 지상 22층, 264개 객실 규모로 위탁 운영 방식이 적용된다. 자산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브랜드와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초기 투자 부담을 낮추고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호텔신라는 향후 중국 옌청과 베트남 하노이에도 신라모노그램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다만 투자자 시각은 여전히 냉정하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주가수익률(PER)과 배당수익률 등 주요 투자 지표는 업계 최저 수준이다”며 “면세점 사업 철수 등 과감한 결정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으나 여전히 주주 친화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했다. /hongg@chosun.com, ks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