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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시대에 전화번호 공개라니" 재건축 조합원 정보 공개 함정 [기고]

  •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입력 : 2026.01.12 15:04

    [기고] 전화번호가 곧 사생활이 되는 시대, 재건축 조합원의 개인정보는 왜 보호받아야 하는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땅집고]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올재단) 단장./본인 제공

    [땅집고]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조합 운영의 투명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다. 조합원은 사업의 당사자이며, 조합 집행부가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절차를 거쳐 사업을 진행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원은 그동안 정보공개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 왔고, 최근 대법원 판례 역시 조합원 연락처와 같은 개인정보도 원칙적으로 열람·복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나는 이 판결을 접하며, 법이 현실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더 이상 전화번호가 단순한 연락 수단에 불과한 시대가 아니다. 전화번호 하나만 있으면 개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고, SNS 계정과 연결해 얼굴 사진과 가족 관계, 취미, 일상 동선까지 파악할 수 있다. 전화번호는 이미 개인을 특정하고 추적할 수 있는 고유식별자로 기능하고 있으며, 사실상 디지털 신분증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도시정비법 체계와 그 하위 시행령, 규정은 여전히 전화번호를 단순한 연락처로 인식하고 있다. 법원 판례 역시 조합 운영의 투명성이라는 명분 아래, 개인정보가 공개된 이후 어떤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피해가 개인의 삶에 어떤 파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판단을 내리고 있다.

    재건축 조합원 다수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이들이 조합원 명부에 기재된 전화번호 하나 때문에 원치 않는 연락과 접근, 사생활 침해의 공포에 노출되는 상황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전화번호를 통해 SNS를 추적하고 사진과 게시글을 통해 얼굴과 가족 관계, 생활 반경까지 유추할 수 있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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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재건축 사업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합원의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된다면, 이는 조합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투명성을 명분으로 한 정보공개가 오히려 조합원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GDPR은 전화번호를 명백한 개인정보이자 식별 가능한 정보로 규정하고, 처리 목적의 최소화와 엄격한 보호 원칙을 요구한다. 반면 우리 제도는 여전히 디지털 환경에서 개인정보가 갖는 확장된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플랫폼 기술은 전화번호 하나로 방대한 개인정보를 결합·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전화번호는 계정과 연결되고, 그 계정을 통해 사진과 위치, 관계망, 소비 패턴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전화번호 공개를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삶 전체를 노출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공개의 목적과 개인정보 보호는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조합 운영의 투명성은 유지하되, 개인식별정보는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조합 전용 소통 시스템이나 익명화된 대체 수단은 충분히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전화번호는 더 이상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으로 이어지는 열쇠다.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존엄과 안전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재건축 조합원들은 이 문제를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오늘 공개되는 정보가 내일은 바로 나의 정보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법과 제도를 점검하고, 도시정비법 하위 규정부터 현실에 맞게 보완해야 할 시점이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정리=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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