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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념' 초고층 빌딩 거부한 정의선 현대차 회장…'마천루의 저주' 벗고 날다

    입력 : 2026.01.08 06:00

    초고층 꿈꾼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의 엄청난 투자
    아들은 10년 넘게 착공도 하지 않아
    GBC 공사비 수조원 절감…AI 등 신사업에는 125조

    [땅집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선대 회장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던 삼성동 초고층 신사옥 랜드마크인 글로벌비즈니스컴플렉스(GBC) 구상을 과감히 접고, 전기차·인공지능(AI)·로봇 등 그룹의 새로운 먹거리에 125조원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정 회장은 최근 향후 5년간 미래 신사업에 125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했다. 직전 5년간 집행한 투자액 89조1000억원보다 36조원 이상 늘어난 규모로, 연평균 투자액만 25조원에 달한다. 생산 능력 확대에 머물던 기존 제조업 중심 투자에서 벗어나 기술과 플랫폼을 축으로 한 구조 전환에 무게를 실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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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집고] 5일 진행한 현대자동차그룹 2026년 신년회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아버지 숙원사업 지우고, 실리 챙겼다

    정 회장은 그간 삼성동 GBC 사업의 방향을 틀면서 이러한 사업 전략을 구체화해왔다. 지난해 12월 현대차그룹은 GBC 층수 변경을 두고 서울시와의 추가 협상을 거쳐 당초 105층으로 설계한 건물 규모를 최종적으로 49층, 3개 동 수준으로 낮췄다. 초고층 건축에 묶일 막대한 자금을 신사업 투자로 돌리겠다는 결단이 반영됐다.

    GBC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직접 챙기며 밀어붙인 숙원 사업이었다. 2014년 현대차그룹은 감정가의 세 배를 웃도는 10조5500억원에 삼성동 옛 한전부지를 매입하고, 이곳에 그룹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GBC는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100년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로 제시됐다. 정몽구 회장의 통큰 구상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도록 착공조차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었었던 것일까.

    GBC 사업은 부지 매입을 추진하던 당시 금액이 워낙 컸던 만큼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당시 10조원은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급 빌딩 여러 개를 살 수 있는 규모의 금액이었다. 자동차 업계 안팎에서는 이 자금이면 자동차 조립공장을 여러 곳 더 짓거나, 수십 종의 신차 개발, 글로벌 완성차 기업 인수도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옥 건설에 과도한 자금이 묶일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일각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한전 부지가 아니라 한전 인수로 오인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천문학적 액수였다.

    실제 삼성동 부지 낙찰을 전후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현대차 주식을 대거 처분하며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전고점을 회복하는 데만 약 7년이 걸렸다.

    공사비 부담도 초고층 사업을 철회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2016년 약 2조원대로 추산되던 건축비는 시간이 흐르며 최소 5조원 이상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고강도 자재와 특수 공법이 필수적인 초고층 구조 특성상 비용 상승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설계 변경으로 건축비는 수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GBC건축비를 두고 자체 자금이 아니라 리츠활용, 선임대 등을 통해 외부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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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층 저주에 빠진 롯데

    부동산 업계에는 ‘초고층 빌딩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 건설은 주로 부동산 버블기에 추진된다. 그러나 정작 건물 완공 시점에는 버블이 꺼지고 경제 불황을 맞는다는 게 바로 초고층의 저주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그룹의 롯데월드타워(123층·555m)다. 2017년 개장한 한국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었다. 건축허가를 받는데만 20년 이상이 걸렸고, 총 공사비는 4조2000억원이 투입됐다. 엄청난 투자비와 운영 비용으로 건물 자체만으로는 수익성을 맞추기 어려워 ‘영구 적자 건물’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롯데그룹은 한국 최고층 빌딩이라는 상징성을 획득했지만 천문학적 자금을 건물 신축에 투자하는 사이 사업 다각화와 신성장 동력 확보에 뒤처졌다.

    반면 삼성은 초고층 건물을 포기하면서 오히려 성장의 계기를 마련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은 1990년대 강남 도곡동에 102층짜리 초고층 삼성타운을 짓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주변에 교통혼잡을 초래한다는 주민 민원으로 인·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고,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결국 초고층의 꿈을 접었다. 비록 초고층 빌딩 건축은 무산됐지만, 사옥 대신 주상복합 타워팰리스를 분양했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전자와 반도체에 집중 투자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초고층 빼고 글로벌 더했다…실적·주가 질주

    초고층 건물은 구시대 재벌경제의 상징물과도 같다. 건물 높이를 기업 자존심으로 여기던 1,2세 재벌회장과 달리 정의선 회장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를 택했다. 정 회장의 결단과 실용주의 전략에 힘입어 현대차그룹의 실적과 주가 흐름도 동시에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판매량 180만대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글로벌 최다 판매 지역인 북미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2030년까지 77조3000억원을 투자하고,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을 8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증권가에서도 현대차의 목표주가를 40만원대로 제시하며 AI 산업 유망주로 분류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신사업 투자 로드맵에 더해 환율 상승 효과와 신차 출시 계획이 맞물리면서 기업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기 호황기에는 상징성을 앞세운 초고층 개발이 잦았지만, 경기 사이클이 꺾일 때마다 재무 부담으로 돌아온 사례가 반복돼 왔다”며 “선대의 상징을 지우는 선택이 쉽지 않았겠지만, 불확실성이 큰 국면에서는 초고층 한 동보다 여러 동으로 나누는 방식이 자금 운용과 사업 유연성 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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