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2.31 06:00
인천 알짜 4만평, 10년째 멈춘 ‘구월 롯데타운’
문화·상업시설 줄이고 주거로 선회
송도·상암도 비슷, 롯데 개발지 ‘장기 표류’ 도미노
[땅집고] 인천 지하철 1호선 인천터미널역 인근.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펜스 너머로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이라는 글자가 적힌 낡은 건물이 보인다. 한때 시민들로 붐비던 옛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은 건물 외벽이 누렇게 변색됐고, 안쪽엔 주차된 차량만 빼곡하다. 인천에서 ‘인천판 롯폰기힐스’를 목표로 했던 대규모 복합개발 계획이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약 4만평(약 13만㎡)에 달하는 도심 핵심 부지가 방치된 것이다.
문화·상업시설 줄이고 주거로 선회
송도·상암도 비슷, 롯데 개발지 ‘장기 표류’ 도미노
[땅집고] 인천 지하철 1호선 인천터미널역 인근.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펜스 너머로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이라는 글자가 적힌 낡은 건물이 보인다. 한때 시민들로 붐비던 옛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은 건물 외벽이 누렇게 변색됐고, 안쪽엔 주차된 차량만 빼곡하다. 인천에서 ‘인천판 롯폰기힐스’를 목표로 했던 대규모 복합개발 계획이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약 4만평(약 13만㎡)에 달하는 도심 핵심 부지가 방치된 것이다.
이 사업의 출발점은 201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시는 당시 재정난 속에서도 도시 브랜드를 끌어올릴 ‘한 방’으로 인천종합터미널과 구월농산물도매시장 일대의 초대형 복합개발을 추진했다. 2012년 9월 인천시는 롯데쇼핑과 인천종합터미널 부지·건물 매각 및 개발을 위한 투자약정을 맺었고, 2013년 1월 터미널과 옛 신세계백화점 부지 7만8000여㎡를 9000억원에 롯데에 매각했다.
이어 구월농산물시장 부지도 롯데의 개발 구상에 편입됐다. 인천시는 2015년 롯데쇼핑 100% 자회사 ‘롯데인천타운’에 구월농산물시장 부지 5만8660㎡와 건물(연면적 4만4100㎡)을 3060억원에 넘겼다. 결과적으로 인천 도심 노른자 땅 13만㎡ 이상이 롯데의 개발 사업으로 묶인 셈이다.
당시 기대감은 컸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 주민 A씨는 “제2의 롯폰기힐스를 만든다는 장밋빛 이야기가 있었고, 시민들은 랜드마크를 기대했다”며 “복합문화시설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롯데는 2조원을 투입해 보행자 중심의 랜드마크 상업시설을 만들고, 생활편의시설과 주거를 결합한 복합개발로 인천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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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업은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수차례 연기됐고, 10년이 넘도록 첫 삽도 뜨지 못했다. 롯데쇼핑은 2023년에야 사업계획을 수정해 인천시 승인을 다시 받았는데, 문화·상업시설 비중을 대폭 낮추고 아파트 999가구, 오피스텔 1314가구를 중심으로 했다. 초기 구상에서 강조했던 ‘랜드마크 상업시설’이 아닌 분양 수익을 우선한 주거 중심 개발로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장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옛 구월농수산물시장 주변엔 한때 100호가량 유통상가가 들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유동인구가 줄면서 폐업이 이어졌고 현재 운영 중인 곳은 20여 곳만 남았다는 게 상인들 설명이다. 30년째 유통상가를 운영 중인 상인 B씨는 “개발을 한다는 말만 거듭하고 더 나아간 소식이 없다”며 “전에는 일대에 유동인구가 넘쳤는데 지금은 사람이 없어 폐업만 수없이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철거 일정도 미뤄지고 있다. 지난 11월 ‘연말 철거’ 소식이 전해졌지만 기자가 현장을 방문한 12월 12일 기준 여전히 조용했다. 지금 속도라면 내년에 공사를 시작하더라도 준공은 2030년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당초 2018년 준공 계획과 비교하면 12년 이상 늦어지는 셈이다.
부지 매입 당시 인허가 측면의 혜택은 있었다. 인천시는 인천터미널 부지를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고, 일반상업지역(최대 용적률 1000%)에서 중심상업지역(최대 용적률 1300%)으로 용도를 올려주는 등 개발 여건을 높였다. 교통·상업 앵커시설을 통해 원도심 일대 활성화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방치되는 사이 땅값은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인천타운이 3060억원에 매입했던 구월농산물시장 부지의 가치는 현재 4600억원대 수준으로, 50% 이상 뛰었다는 분석이 거론된다. 이정석 인천평화복지연대 전환팀장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기대를 모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문화·상업 기능을 빼고 주택 중심으로 가는 것 아니냐”며 “시민 입장에선 ‘속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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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측은 땅집고와의 인터뷰에서 “옛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은 내년 철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업 지연 이유에 대해서는 “지역민들의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고, 분양시장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 중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롯데의 ‘사놓고 안 짓는’ 행태는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됐다. 송도국제도시의 ‘롯데몰 송도’는 2008년 착공 신고 이후 17년째 완공되지 못했고, 롯데마트와 오피스텔만 먼저 들어선 채 핵심 쇼핑몰은 계획 변경과 준공 연기가 이어졌다. 서울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앞 ‘상암 롯데몰’ 부지도 매입 이후 10년이 넘도록 흰색 펜스와 주차장만 남아 있다.
사업을 추진할 역량과 의지가 있다면 일정과 실행계획을 투명하게 제시해야 하고, 감당이 어렵다면 공공과 시민을 위한 방식으로 정리하는 결단 도 필요하다. 지자체 역시 대형 개발을 민간에 맡길 때 사업 지연에 따른 패널티 등 안전장치를 계약 단계에서부터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0629a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