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2.22 14:48 | 수정 : 2025.12.22 15:01
[땅집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의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두고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지배권을 행사한다”며 “회장 했다가 은행장 했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10년, 20년씩 하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요새 저한테 투서가 엄청 들어온다. 그런데 그 주장이 단순히 경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음해가 아니라,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금융권 인사 문제에 대해 문제점을 짚었다.
대통령 발언의 맥락을 볼 때 5대 금융그룹 회장과 지방의 금융지주 회장 및 행장들을 정면 겨냥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금감원은 금융지주사의 경우 회장과 관계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사회가 구성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짚으며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입법 과제를 내년 1월까지 도출하겠다고 했다.
◇ “가만 놔두니 부패한 이너서클”…李 대통령, 누굴 겨냥한 걸까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업계에서는 최근 진행 중인 은행장들의 인사 상황을 콕 짚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2일 금융감독원은 대통령의 지적이 이어지자 내년 1월부터 첫 타자로 BNK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한 검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BNK금융지주는 지난 8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열고 빈대인 현 BNK금융지주 회장을 차기 대표이사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선임안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면 빈 회장 임기는 2029년 3월로 연장된다.
빈 회장은 1960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부산 동래원예고, 경성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부산은행에 입행해 2013년부터 BNK그룹 경영진을 맡았다. 경남지역본부장·신금융사업본부장·미래채널본부장직을 거쳤고, 2017년 9월부터 2021년 3월까지 부산은행장을 지냈다. 2023년 3월부터는 BNK금융 회장직으로 복귀했다.
내부에서 승진한 인물이지만, 외부 인사와 경쟁 없이 연임한다는 점을 업계에선 문제삼고 있다. 지난 10월 이찬진 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일부 금융지주 회장이 이사회에 자기 사람으로 참호를 구축한다”고 비판했다. BNK금융 지분 약 3%를 보유한 라이프자산운용은 “부실한 경영 성과에도 연임을 위해 무리하게 선임 절차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주주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 윤석열 정부와의 유착설이 불거진 것도 눈총을 사는 이유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개입한 도이치모터스의 특혜성 대출에 빈 회장과 방성빈 BNK부산은행장이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은행측은 “빈 회장 취임전에 대출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도이치모터스는 윤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개입 의혹을 받고 있다. 여당은 BNK금융그룹의 자회사인 부산은행의 도이치모터스 특혜 대출을 비롯해 회장 추천위 불투명 운영, 이사회 인선 의혹 등을 이유로 빈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정치권에서는 빈 회장이 윤석열 정부 인수위 활동을 했다며 전임 정부와 연결돼 있다는 주장도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9일 기자회견에서도 참여 의원들은 “빈 회장은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정치권과의 연결 고리를 통해 금융권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 부산 남구청장 예비후보로까지 거론된 바 있다”고 주장했다.
◇ 금감원, “내년부터 금융지주사 회장 선임 절차 들여다본다”
금융권에서는 5대 금융권(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차기 금융지주 회장 선임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이 유력해지고 있다. 보수 정권 3대에 걸쳐 요직을 두루 거쳤는데도 진보 정권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다만 업계에선 금융위원장 출신 인사가 금융지주사 회장에 오르는 것을 두고 대표적인 회전문 인사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고졸 은행원으로 시작해 금융그룹 수장에 오른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5일 연임이 확정됐다. 2023년 3월 처음 회장으로 취임한 뒤 내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에 성공했다. 다음 임기는 2029년 3월까지다. ‘이너서클’ 비판의 정조준 대상은 아니지만, 연임 과정에서 외부 경쟁 구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거론되는 금융 지주사에 관해 검사 착수를 준비하고 있다”며 “내년 1월 중 구체적인 내용을 별도 보고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