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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주택시장 항복선언, 서민들에게 축복이 되려면

    입력 : 2025.12.09 14:26 | 수정 : 2025.12.09 17:51

    [땅집고] “제가 수도권, 서울 집값 때문에 욕을 많이 먹는 편인데 대책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충남 천안 타운홀 미팅에서 “있는 지혜와 없는 지혜를 다 짜내고 모든 정책 역량을 동원해도 구조적 원인이라 해결이 안 된다”고 했다. 취임 이후 ‘6·27 초고강도 대출 규제’ ’9.7 공급대책’ ‘10·15 규제지역 확대’ 등 3차례의 대책에도 강남권 집값이 계속 치솟자 이 대통령이 사실상 주택시장에 항복 선언을 했다.

    이 대통령의 항복 선언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주택가격을 때려잡겠다”던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숱한 규제 폭탄을 던졌지만, 집값은 오히려 폭등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집값만은 잡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이 사상 최악의 집값 폭등 현상으로 이어졌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말은 부동산 정책에도 적용된다. 정권이 끝날 때까지 무모한 규제정책을 펴다 정권을 내준 노무현 문재인 정부와 달리, 이재명 대통령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집권 6개월 만에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정권이 끝날 때까지 미련하게 집값 타령을 늘어놓다 결국 정권을 내놓은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했다.

    21살의 아이돌 스타 장원영이 최근 137억원의 빌라를 현금으로 구입해 화제가 됐다./조선DB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주택시장 항복 선언은 정책의 포기가 아니라 한국의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 주택 정책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처럼 좌파 지식인들의 규제 만능주의에 현혹된 이재명 정부는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초강경 대책을 퍼부었다. 윤석열 정부의 공급 실패로 집값이 치솟았다고 변명하면서 시간을 벌 수 있었는데도 이재명 정부는 너무나 무모한 선택을 했다.

    정부 출범 한 달도 되지 않아 발표한 6.27대책은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모든 규제를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곳에 선포된 주택거래허가제는 중국 공산당도 감히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초헌법적, 위헌적 조치이다. 6억원 초과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대책은 군부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행정편의주의적 대출 규제정책이다.

    이들 대책이 나오자 좌파 지식인들은 “드디어 집값을 잡을 수 있는 완벽한 대책’이라고 용비어천가를 남발했다. 대통령도 이들의 상찬에 취한 듯 황당한 대출 규제 정책을 주도한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칭찬했고 그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했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관료들이 그런 정책을 펴지 않은 것은 머리가 나빠서도,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다. 정부 정책에도 하지 말아야 할 금도라는 것이 있다. 민주공화정이 왕정이나 공산당 정권과 다른 것은 목적뿐만 아니라 방법의 정당성, 합리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궁예의 관심법’이라도 가진 것처럼 대출의 제한을 6억원으로 설정한 것은 어떤 합리성도 없다.

    서울과 경기도의 아파트를 거래할 때 정부의 허가증을 받도록 하는 토지거래허가제에 대해 “서울이 평양이냐”라는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집값이 오르지 않은 지역에 집 한 채 가진 국민까지 괴롭히는 제도를 대통령 탄핵 덕분에 집권한 민주 정부가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것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만큼이나 황당한 일이다.

    만화에서나 나올 만한 초현실적 정책이 도입된 것은 강남 등 인기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것까지 막아야 한다는 좌파 지식인들의 주술에 정치인과 대통령, 국민들이 포획된 결과이다. 강남 고가주택 집값이 오르는 것은 정부 정책의 잘못이 아니다. 금리와 유동성, 소득 양극화, K팝의 성공, 신흥 갑부의 탄생 등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적 상황이 초래한 결과물이다.

    21살의 아이돌 장원영이 재벌 4세가 살던 137억원의 빌라를 전액 현금으로 구입했다. 지드래곤은 3채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시세만 600억원에 달한다. 강남 학원가 일타강사가 250억원 짜리 주택을 현금으로 매입한 것이 2017년이다. 손흥민은 강남에 400억원 짜리 주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류 바람을 타고 중국 등 외국의 부유층도 한국의 집을 사기 시작했다. 사이비 좌파 지식인들이 집값 문제를 해결한 천국으로 포장해 놓은 싱가포르와 도쿄도 중국인 부유층의 수요로 집값이 치솟고 있다. 고급 주택의 가격이 치솟는 것은 선악이나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배 아픔의 문제와 배고픔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

    일부 지역 집값이 치솟는다고 주택거래허가제를 도입한 나라는 한국 외에는 어디에도 없다. 공산당이 집권한 중국과 베트남도 채택하지 않는 정책이다. 국민 1인당 월평균 소득이 30만원에 불과한 베트남에서도 평당 3000만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들이 많다. 베트남 정부가 서민들이 꿈도 꿀 수 없는 고가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다고 정책을 편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없다.

    중국 공산당도 2021년 ‘다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론을 내세우며 집값 때려잡겠다고 대출 총량 규제를 도입했다. 집값은 잡았지만, 개발업체의 연쇄부도와 내수 침체가 경제가 타격을 받자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쓰고 있다. 중국 공산당도 두 손 두발 다든 이유는 부동산 시장의 이중성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이 사실상 주택시장에 백기투항했지만, 누구도 그를 겁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게 국민을 부유하게 하는 경제정책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90년대 집값 잡겠다고 세금과 금리 올리고 대출 총량제를 도입, 집값을 폭락시키는데 성공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20년 장기 침체의 방아쇠를 당긴 꼴이 됐다.

    내년에는 집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주택 공급 감소에다 미국이 금리 인하를 본격화하고 유동성 살포에 나서면 집값이 어떤 식으로 튈지 장담하기 힘들다. 정부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본처럼 20년 장기 불황에 빠져도 좋다면 세금폭탄, 금리 폭탄, 대출 규제 폭탄을 퍼부으면 된다. 그러나 화폐 놀음인 집값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서민들의 삶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항복 선언이 서민들에게 승리의 찬가가 되려면 정책의 목표,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초고가 주택과의 전쟁이 아니라 젊은 층과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저렴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고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정부의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 한강변에 100억, 200억원 하는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들이는 신흥 갑부, 외국인들의 과시적 소비를 막기 위해 행정력을 낭비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강남3구, 마용성의 아파트가 비싸다가 아우성을 펴지만 지금도 경기도, 인천에는 5억원이면 살 수 있는 아파트들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이들 지역의 교통, 교육 인프라를 개선해서 수요를 분산해야 한다. GTX로 교통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지역에 신도시를 개발해서 5억원 이하의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통령의 항복 선언이 서민들에게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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