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2.05 06:00
[땅집고] 지방 부동산 시장의 악성 미분양 단지가 민간임대로 전환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분양가 할인, 중도금 지원 등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어도 팔리지 않자, 건설사들이 결국 CR리츠(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를 활용해 미분양 물량을 통째로 넘기고 임대 사업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선 뒤 추후에 분양 시장 상황을 보고 재분양에 나서 분양 수익을 거둔다는 계획이다.
◇악성 미분양, 임대주택으로 자금줄 확보
3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반도건설·한신공영 등 주요 건설사들이 장기화된 지방 미분양 단지를 CR리츠를 통해 민간임대 주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 중이다.
현대건설은 대구 중구 ‘힐스테이트 대구역퍼스트’ 잔여 미분양 215가구를 CR리츠에 넘겨 연내 임대 가구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단지는 2021년 첫 분양 이후 4년 넘게 미분양을 털어내지 못했고, 올해는 준공 후에도 팔리지 않아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됐다.
반도건설은 경북 경주시 ‘신경주 반도유보라 아이비파크’ 2개 단지의 미분양 잔여 물량을 CR리츠가 매입했다. 해당 가구는 모두 임대로 공급된다. 한신공영도 경남 양산시 물금읍 ‘양산 한신더휴’(405가구) 중 260여 가구를 임대 전환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분양률 부진으로 공사비의 약 90%가 미지급된 상태라, 리츠 매각을 통해 긴급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미분양 해결 방안…기존 수분양자와 형평성 논란 불가피
CR리츠는 시행·시공사가 미분양 가구를 리츠에 넘기고, 리츠는 임대 운영 후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재분양으로 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시행사·시공사 입장에선 장기간 미분양으로 묶인 자금을 임대방식으로 회수해 재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CR리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도입됐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는 활용이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 기업형 임대와 리츠 시장이 커지면서 규제가 완화돼 지방 미분양 해결 방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는 “CR리츠는 금융 흐름이 막힌 지방 미분양 시장에서 일종의 자금 순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실제 시장 안정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분양자들과의 형평성 시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CR리츠가 단지를 매입할 때는 기존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대구 ‘힐스테이트 대구역 퍼스트 1·2차’에서는 최근 수분양자 50여 명이 현대건설과 시행사를 상대로 단체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최 교수는 “리츠는 사업성이 있어야 설립되는 만큼, 낮은 가격으로 매입하는 게 일반적이다”며 “이미 계약한 수분양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어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