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1.30 06:00
[땅집고] 경기도 안성의 한 아파트 단지에 거대한 탑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을 찾았다. 탑이 자리한 곳은 1991년에 준공된 ‘아양주공1차 아파트’로, 올해 준공 34년 차를 맞은 단지다.
아파트 주차장 쪽으로 들어서자 회색빛의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원통형 기둥 위에 반원형의 물체가 얹혀 있는 형태로, 외관만 보면 마치 UFO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규모가 더욱 뚜렷해졌다. 기둥은 성인 남성이 두 팔을 벌려 여섯 번을 감아야 한 바퀴가 될 정도의 크기다.
아파트 주차장 쪽으로 들어서자 회색빛의 거대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원통형 기둥 위에 반원형의 물체가 얹혀 있는 형태로, 외관만 보면 마치 UFO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규모가 더욱 뚜렷해졌다. 기둥은 성인 남성이 두 팔을 벌려 여섯 번을 감아야 한 바퀴가 될 정도의 크기다.
탑 하단에는 사람이 간신히 드나들 만한 작은 문이 있다. 그러나 문은 녹슨 자물쇠로 굳게 잠겨 내부 출입은 불가능한 상태다. 탑의 높이는 약 30m, 아파트 10층과 맞먹는 규모지만 외형만으로는 용도를 짐작하기 어렵다. 주민들 역시 이 구조물의 정체를 모른 채 수십 년을 살아왔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 거주 중인 한 주민은 “어릴 때부터 봤는데 뭔지 몰라 그냥 UFO라고 불렀다”며 “저걸 왜 저렇게 높이 올려놨는지 늘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기자가 아파트 주민들에게 물어본 결과 대부분은 “입주 때부터 있었다”고 기억했다. 실제로 1991년 항공 지도에는 해당 구조물이 찍혀 있었으나, 그보다 앞선 1983년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파트 준공과 거의 동시에 세워진 시설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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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거대한 구조물의 정체는 ‘고가수조’다. 높은 위치에 물을 저장한 뒤 중력으로 아래 세대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1970~1990년대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시설이다. 원뿔형 구조가 물의 하중을 균일하게 분산시키고, 침전물과 불순물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모여 배수 효율을 높이는 장점 때문에 특이한 구조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주현 한밭대 교수는 “과거 아파트는 세대 수가 많아 이런 고가수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상수도 시스템이 안정돼 대부분 철거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2000년대 들어 ‘가압직결급수’ 방식이 보급되면서 고가수조는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고가수조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도 한몫했다. 그러나 기존 고가수조는 철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이 들기도 한다. 높이와 구조적 위험 때문에 안전 조치 비용도 상당해 쉽게 철거하지 못하는 단지도 많다.
안성 아양주공1차의 고가수조 역시 같은 이유로 30년 넘게 단지 한가운데 남아 있는 상태다.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외부인들에게는 기이한 ‘UFO 탑’으로 불리며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고가수조는 현재 기능을 잃은 채 방치돼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평도 있지만, 한 시대의 급수 방식을 간직한 흔적이자 노후 아파트에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생활 기반시설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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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 위치한 정수탑 고가수조는 철거 대신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 1986년 축조된 가락시장 정수탑은 시장 내 시설에 지하수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고가수조다. 그러나 2004년 물 공급 방식이 변경되면서 기능을 상실해 장기간 방치돼 왔다.
서울시는 노후 시설을 정비하는 차원에서 해당 구조물을 공공미술 작품으로 전환하기 위해 지난해 국제복합공모를 진행했다. 이후 높이 32m의 정수탑은 설치미술가 네드 칸의 작품 ‘비의 장막’으로 재구성됐다. 외관 노후로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을 받아온 고가수조가 공공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다.
작품 공개 이후 주민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장기간 방치되던 시설이 재정비되면서 주변 환경 개선 효과도 나타났다는 평가다. 한때 기능을 잃은 채 흉물로 남았던 고가수조가 도시 재생의 한 사례로 활용된 셈이다. /chujinzer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