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1.14 06:00
[땅집고]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르에 우뚝 서있는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1998년 준공한 최고 88층, 총 451.9m 높이 건물이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고층 빌딩이라고 하면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2010년·828m)를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였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쌍둥이처럼 꼭 닮은 건물 2개동으로 구성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 두 개 건물을 공중에 떠 있는 하늘다리가 연결하는 구조다.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면서도 현대 건축의 모더니즘을 조화한 듯한 외관 디자인으로 준공 당시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설계는 아르헨티나 출신 건축가 ‘시저 팰리’(Cesar Pelli)가 맡았다.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쌍둥이처럼 꼭 닮은 건물 2개동으로 구성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 두 개 건물을 공중에 떠 있는 하늘다리가 연결하는 구조다.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면서도 현대 건축의 모더니즘을 조화한 듯한 외관 디자인으로 준공 당시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설계는 아르헨티나 출신 건축가 ‘시저 팰리’(Cesar Pelli)가 맡았다.
재밌는 점은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짓는 과정에서 마치 축구 경기에서나 볼 수 있는 열기를 방불케하는 ‘한일전’이 벌어졌다는 것. 건물을 구성하는 두 개동 중 서쪽 ‘타워1’은 일본의 카지마건설이, 동쪽 ‘타워2’는 대한민국의 삼성물산이 각각 시공을 맡으면서다.
올해로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물산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사로서 인지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은 기업이었다. 1984년 시공한 최고 25층 높이 ‘삼성생명빌딩’이 대표작이었을 정도다. 반면 카지마건설은 1840년 설립한 역사를 바탕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설사로 꼽혔다. 일제강점기 때도 우리나라 곳곳에 도로와 댐 등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면서 기업 규모를 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역사 때문인지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시공사로 선정된 삼성물산과 카지마건설 사이에선 초반부터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어 더해 건물 공사 발주처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공사 기간을 기존 33개월에서 6개월 단축시켜달라고 요구하면서 본격 ‘한일전’이 시작됐다. 말레이시아가 대한민국과 일본 간 감정 싸움을 파악하고, 두 건설사끼리 경쟁을 붙이면서 누가 더 빨리 건물을 완공하는지 시합이 벌어진 것. 당시 말레이시아가 양측에 준공 지연에 대한 벌금을 매기는 바람에 공기 단축 압박이 심했다고도 전해진다.
사업 초반에는 삼성물산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삼성물산 시공팀이 카지마건설보다 35일 늦은 1993년 11월쯤 투입된 탓이다. 이 때문에 건물 중층부까지는 시공 속도가 평균 4~5층에서 8층까지도 뒤쳐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두 건설사 모두 건물 한 층을 올리는 데만 1주일 정도가 걸렸는데, 바로 옆에서 올라오는 경쟁사 건물 시공 속도에만 신경쓰다 보면 자칫 부실 공사 위험이 있어 예민한 분위기였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초고층 건물 건축 과정에서 상층부로 콘크리트를 옮길 때 ‘윈치(winch) 운송법’을 썼다. 와이어가 달려 있어 도르래 역할을 하는 ‘윈치’란 기계를 활용해 콘크리트를 담은 통을 중간층까지 올린 뒤, 다시 펌프를 써서 고층 타설 지점까지 콘크리트를 옮기는 방식이다. 카지마건설은 당시 업계 대세대로 이 기법을 활용해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반면 착공이 늦은 만큼 시간 단축과 고품질 시공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던 삼성물산은 ‘펌프 압송법’이란 새 공법에 도전했다. 당시 우리나라 펌프 기술로는 콘크리트를 고층까지 올려보낼 수 없었던 만큼 초고층 건물 건축에서는 쓸 수 없었던 기법이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독일의 한 펌프 회사와 협업해 콘크리트를 건물 최상부까지 곧바로 쏘아 올리는 펌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콘크리트가 펌프를 통해 올라가는 도중 굳어버리거나 점도가 강해 운반에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혼화제와 배합 비율 등에 대해 고심한 결과 펌프 압송법을 문제 없이 쓸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삼성물산은 기발한 공법으로 카지마건설의 시공 속도를 금세 따라잡기 시작했다. 꼭대기층 부근을 시공할 쯤에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맡은 두 건물 높이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됐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 투입된 삼성물산 직원 총 83명이 자발적으로 휴가도 반납할 정도로 공사에 열정을 다한 점도 공기를 단축하는 데 일조했다고 알려졌다. 그 결과 두 건설사가 최고층에 콘크리트를 붓는 마지막 타설 작업을 같은날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카지마건설 쪽에서 문제가 터졌다. 타워1 건설 도중 건물이 25mm 정도 기우는 사태가 발생한 것. 지상 세계에선 콩알만한 오차지만, 초고층 건물에선 중대한 결함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이 25mm 오차를 바로잡는 동안 삼성물산은 본격 역전에 나서기 시작했다. 더불어 각 건물 꼭대기에 얹을 60m 높이 첨탑이 삼성물산 측에는 제 때 도착했지만, 일본 측 배송은 다소 늦어진 점도 승기를 잡는데 한몫했다.
결국 1995년 12월 2일 새벽 3시, 삼성물산이 타워2에 일본보다 먼저 첨탑을 세우면서 3년 간의 ‘시공 전쟁’에서 최종 승리했다. 일본은 이보다 10일 더 늦은 시점에 타워1 공사를 마쳤다. 해외 마천루 건축 과정에서 벌어진 한일전이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난 셈이다.
건설업계에선 삼성물산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시공 사례가 우리나라 건축 기술의 발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준공 후 해외 곳곳에서 여러 초고층 건물 공사를 수주해내면서, 현재 국내 1등 건설사를 넘어 세계 정상급 건설회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