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1.12 06:00
세운4구역 초고층 재개발, ‘세계유산’ 종묘 훼손 논란
리버풀 해양무역도시, 유적 자체 훼손 개발로 등재 취소
런던·도쿄는 ‘공존’으로 금융·관광 중심지로
[땅집고] 최근 서울 종로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영국, 일본 등 문화유산 인근 개발로 인해 문화재 가치가 훼손되거나 상승한 사례까지 주목받고 있다.
리버풀 해양무역도시, 유적 자체 훼손 개발로 등재 취소
런던·도쿄는 ‘공존’으로 금융·관광 중심지로
[땅집고] 최근 서울 종로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영국, 일본 등 문화유산 인근 개발로 인해 문화재 가치가 훼손되거나 상승한 사례까지 주목받고 있다.
정비업계과 정치권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 도시정비형재개발사업이 서울시와 정부의 정면대결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문화유산 인근 개발 규제를 완화하는 조례 개정이 합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우려가 화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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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각각 세운4구역과 종묘를 찾아 개발의 정당성과 문화재 보호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운4구역은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있어, 서울 기준 100m로 정해진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밖에 있으므로 ‘세계유산법’ 등에 따라 규제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반면 김민석 국무총리, 정원오 성동구청장 등 정부와 여당 정치인들이자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들이 서울시를 비판했다.
이에 세운4구역 토지등소유자들은 정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주장에 대해 “억측과 협박”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대응까지 시사했다. 동시에 해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지위 유지 사례를 통해 개발 자체보다는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 20년 끌고 온 세운지구 재개발, 대법 판결에도 ‘문화재 훼손’ 논란
세운4구역은 과거 노후화한 세운상가 인근 재정비촉진구역 중 사업 추진이 가장 더딘 곳이다. 2006년 처음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으나,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사업은 지연됐다. 2023년 철거를 완료했지만, 아직까지 착공하지 못하고 있다.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4구역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와 인접해있기 때문이다. 4구역 사업성을 위해 높이 제한을 완화하면 종묘의 경관을 해쳐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될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 일부개정안’을 무효로 해달라고 낸 행정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달 6일 나왔다. 국가지정문화재 보존지역(외곽 경계로부터 100m 이내) 밖에서 건설공사를 하더라도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삭제했다. 대법원 판결로 세운4구역 재개발 법적 근거가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는 대법원 판결을 앞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해 최고 높이를 당초 종로변 55m·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101m·청계천변 145m로 변경했다. 세운4구역 측은 종묘 외대문에서 27도 양각 기준 의무적용구간을 구역 내로 확대 적용해 시뮬레이션해 종로변 98.7m·청계천변 141.9m로 건설하는 구상을 내놓았다.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는 11일 입장문을 통해 “세운4구역은 종묘 정전에서 600m 이상 떨어져 세계문화유산 보호 완충구역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국가유산청 등은 맹목적인 높이 규제를 외치고 있다"며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해지될 것이라는 주장은 억측이며 협박에 지나지 않으며, 재개발로 대규모 녹지가 종묘와 남산을 연결해 종묘가 더 빛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리버풀은 안 되고, 런던·도쿄는 되는 이유?
주변 개발로 인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우려가 제기되면서 해외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등재가 취소된 영국 리버풀의 해양무역도시는 보존지역 내에서 대규모 개발이 이뤄졌으나, 초고층 빌딩이 인근에 들어선 런던의 런던타워는 문화재와 거리, 경관을 고려한 설계로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유지했다.
리버풀은 18~19세기 대서양 무역 핵심 항구이자 산업혁명 중심지 역할을 한 도시다. 구항만은 세계 무역 중심지로서 근대식 건물과 부두 등이 잘 보존돼 있어 200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약 9조원을 들여 리버풀 수변구역에 상업과 주거 시설을 개발했다. 프리미어리그(PL) 에버튼FC의 새 축구경기장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선착장과 석조 구조물 등을 훼손했다.
그 때문에 유네스코는 2021년 세계유산 등재를 취소했다. 단순하게 고층 개발을 한 것이 아니라 유적지 자체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종묘 인근에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종묘 안에 새로운 건물을 지은 격이다.
반면 1988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런던의 런던타워 주변 지역 고층 개발은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유지하면서 관광 활성화 등 도시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펜처치 스트리트(160m), 리덴홀 빌딩(225m), 세인트메리엑스(180m)가 인근에 들어서며 유네스코가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런던타워에서 500여m 떨어져 있고 경관을 고려한 설계로 영향을 최소화했다.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 관계자는 “런던타워에서 400~500m 떨어진 지역에 세운4구역보다 2~3배 높은 건물들이 건축됐다”며 “런던타워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재개발 완료 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으며 국가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종로변 건축물 높이를 대폭 낮추고, 종묘를 고려한 입면디자인 경관계획을 수립했다”며 “녹지축 조성을 통해 종묘를 향하는 시민들의 접근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3년 특별사적으로 지정된 일본 도쿄의 황거 주변 개발은 세운4구역을 비롯한 세운지구 개발이 벤치마킹한 사례다. 현재도 일왕이 거주하는 황거에 가까울수록 고도 제한을 낮게 하지만, 멀어질수록 높은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도록 허용했다. 그렇게 조성된 마루노우치 지구는 ‘일본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경제 중심지이자, 관광지로 거듭났다.
문화청, 지자체 등 관청과 민간 디벨로퍼가 협의체 구성해 설계를 협의하는 방식을 취한다. 건축 인센티브를 부여해 개발 허가를 해주는 대신 일정한 공공기여를 통해 기반시설, 녹지 등을 확충해준다. 세운지구 재개발 역시 서울시가 건축 높이를 완화해주는 대신 남산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녹지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raul164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