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10.24 14:01
[땅집고] 아파트 재건축을 대체할 새로운 리모델링 시대가 열렸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가 입주민 이주 없이도 노후 아파트를 개선하는 새 리모델링 모델을 추진한다. 기존 재건축·재개발 중심 주택정비사업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현대 삼성이 제시한 리모델링을 재건축과 2000년대 초반 주를 이뤘던 기초 리모델링(페인트 보수, 간단한 수리)의 중간 단계로 보고 있다. 기존 골조를 유지하면서도 입주민 요청에 따라 인테리어, 외관 등 공용부 중심 성능 개선에 집중한다. 공사 기간도 1~2년 수준으로, 최소 10년 이상 걸리는 재건축과 비교했을 때 훨씬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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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만 가구 새로운 대안 찾다
기존 리모델링은 주로 지하를 뚫어 주차장을 신설하거나, 증축하는 등 재건축에 준하는 '대공사'였다. 이 방식은 비용과 기간이 재건축과 유사하여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한 건설업계 전문가는 "기존 주차장 건설 및 증축 위주의 리모델링은 비용과 기간이 재건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며 "최근 현대 삼성이 제시한 중간단계 리모델링 방식은 비용과 기간을 최소화하면서도 노후 아파트를 구제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방식이 활성화되면,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채우지 못했지만 내부 설비나 마감 등이 노후화된 ‘준공 20~30년 구축’ 아파트들이 수혜를 볼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아파트 약 1263만 가구 중 약 47%인 600만 가구가 준공 20년을 넘긴 노후 단지다. 그 중 약 380만 가구는 아직 30년을 채우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모델링은 노후 단지의 딜레마를 풀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른다.
건설사들이 주로 주목하는 곳은 2000년대 초반 지어진 단지다. 기존 골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골조는 튼튼하지만, 커뮤니티·조경·층간소음 기술 등이 뒤처진 곳이 주요 타깃이 된다.
◇증축보다, 성능 개선에 집중
현대건설은 지난 6월 '이주 없는 리뉴얼'로 대수선 시장에 뛰어들었다. 강남구 삼성동 '힐스테이트2단지'가 대표 사례다. 준공 18년차 단지로 재건축 연한인 30년을 채우지 못했으나 리모델링은 준공 15년이 지난 공동주택이면 적용 가능하다. 입주민이 이사할 필요 없이 외벽·조경·커뮤니티 등 공용부 중심 대수선에 들어간다. 전기차 화재 방지 설비, 스마트 출입 시스템 등 첨단 기술도 적용한다. 재건축 없이도 노후된 시설을 신축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이다.
삼성물산은 지난달 '넥스트 리모델링'을 선보였다. 아파트 내·외관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스마트홈 기능 등 첨단기술을 접목한다. 재건축에 비해 인허가 기간이 짧고 공사도 2년 이내로 가능하다. 삼성물산은 서초 래미안·반포 푸르지오 등 12개 단지와 파트너십을 맺고 리모델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모두 기존 구조를 최대한 활용해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아파트 자산가치를 높인다는 점에서 이전 리모델링 방식과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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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새로운 성장동력
건설업계는 리모델링 시장 전반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업계는 현재 20조~25조원 규모인 리모델링 시장이 2030년 3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도 정비시장 활성화를 위해 리모델링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으로는 리모델링 조합이 별도의 주택건설사업자 등록 절차 없이도 사업을 직접 시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한다. 또 조합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총회 전자투표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아울러 증축형 리모델링의 세대수 증가 한도를 기존 15%에서 20%까지 확대하는 제도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리모델링의 사업성을 높여 재건축을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간 재건축과 대규모 리모델링이 불가능한 단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간단한 보수공사나 페인트칠 정도가 전부였다"며 "새로운 방식의 리모델링이 성공한다면 선택지가 늘어나 노후아파트 입주민들 주거 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or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