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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식 부동산 버블붕괴될까.."엉터리 정책이 20년 경기 침체 초래"

    입력 : 2025.10.14 14:45 | 수정 : 2025.10.24 16:40

    [땅집고]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한국의 일본식 버블 붕괴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 국민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을 국제적 (기준과) 비교한 게 있는데 (높은 것으로) 1등”이라며 “(부동산 가격이) 과대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일본처럼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일본이 1980~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 후 약 20년간 장기침체를 겪은 사례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땅집고]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30년 장기 침체를 초래한 일본의 버블붕괴는 중앙은행과 정부의 엉터리 경제정책의 부작용을 설명하는 사례로 유명하다.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버블형성과 붕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일본의 버블이 유독 자주 언급되는 것은 버블 붕괴의 여파로 20년 경제불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대출규제, 보유세 인상, 금리인상 등 극약처방을 한꺼번에 펼쳐 일본의 경제적 토대 자체를 무너뜨렸다.

    일본에서 진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부동산 대책을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집값 잡겠다고 대책을 남발하다가는 어느 순간 국가 부도 수준의 경제적 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일본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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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이 키운 버블

    일부에서는 1980년대 말 일본의 부동산 버블형성 과정이 한국의 집값 폭등과 유사한 만큼, 한국도 집값 폭락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도쿄 도심 3개구의 땅을 팔면 미국 전체토지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원인은 ‘불황’을 막기 위한 경기 부양용 저금리 정책이었다.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1986년 5%에서 1987년 2.5%로 급격하게 인하했다. 미국이 1985년 막대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일본에 강요한 ‘플라자 합의’에 따라 일본은 1985년 1 달러당 250엔을 1986년 150엔대로 급격하게 엔화 가치를 높였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수출기업들이 비명을 질렀고 실제 실질 GDP 성장률이 1985년 4.4%에서 1986년 2.9%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각종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일본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고 유동성 공급을 확대한다. 저금리 대출경쟁까지 불 붙으면서 부풀려진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밀어 올렸다. 1986~89년 매년 주가와 부동산이 20~30%씩 치솟는다. 일본은 국토면적이 넓지 않기 때문에 절대 땅값이 떨어질 수 없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부동산이 최고야’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비슷해보이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일본은 당시 전국적으로 토지, 주택 등 전체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부동산 담보대출을 활용한 기업들의 투자붐이 전국으로 불었다. 특히 1987년에 제정된 '종합 리조트법'에 따라 지자체와 민간 기업의 대규모 리조트 개발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 국민의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서, 레저 및 여행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가 개발 붐을 부추기면서 전국의 토지 가격이 뜀박질했다. 반면 한국은 한국은 서울의 강남권 등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지방은 물론 수도권 외곽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지방 부동산은 주택은 물론 토지, 오피스 등이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대출규제, 보유세, 금리인상 3종 세트가 초래한 20년 불황

    당시 일본정부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도 토지거래 감시구역 지정, 대출 심사 강화 등 단계적인 조치만 취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집값 반값으로 낮추자”는 특집 방송을 연일 내보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방치한 정부와 일본 은행의 무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 집값이 폭등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식 버블 붕괴 가능성을 언급했다./조선DB

    부동산 가격 폭등이 사회갈등을 유발하면서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했다. 버블을 어느 정도 용인하던 일본정부는 여론에 등 떠밀려 부동산 대출을 사실상 틀어막는 수준의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 제도를 도입한다. 버블의 절정기인 1989년 12월 일본은행 총재로 취임한 미에노 야스시( 三重野 康)는 ‘인플레 없는 성장’을 주창하면서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다.

    정부 요청으로 금리인상에 소극적이었던 전임총재와 달리 그는 “부동산 가격이 20% 정도는 떨어져야 한다”면서 2.5%까지 내렸던 기준금리를 1990년 8월에 6%까지 올린다. 여기다가 1988년 바젤합의에 따라 은행들도 부동산 담보 대출을 줄이는 등 ‘삼각파도’가 부동산 시장을 덮친다.

    부동산 시장보다 주식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1989년 12월 3만8915로 정점을 찍은 주가는 금리인상이 본격화하면서 1990년 10월 2만 선이 깨진다.대출 총량제, 금리인상과 함께 보유세 강화도 폭락의 방아쇠를 당겼다. 일본 정부는 토지 보유세의 과표를 현실화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에 대해 지가세를 신설하는 등 보유세 강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취득세율을 인상하고 토지 거래 신고를 강화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끝없이 치솟던 땅값도 조정기를 거쳐 하락세로 돌아선다. 당시 미에노 야스시 일본은행 총재는 ‘서민을 위해 거품이라는 악을 퇴치하는 의적’, ‘버블 퇴치사’라는 칭송을 받는다. 그는 1994년 12월까지 재임하면서 부동산과 주식가격을 급락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에 너무 소극적이었다. 그는 일본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본경제를 망친 주범’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일본은행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90년 6%였던 기준금리를 93년 1.75%까지 다시 낮추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너무 천천히 금리를 낮췄다는 비판이 나온다.

    2002년 미국 연준의 경제학자들은 보고서를 통해 “1989년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중앙은행이 정책 금리만 공격적으로 더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경기침체가 왔지만, 부동산 시장의 반등을 우려해서 금리인하의 시기를 실기하면서 장기 불황에 빠졌다는 것이다. /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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