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세입자 보증금 못 준다" 가을이면 정부發 '빌라 전세' 대란 온다

    입력 : 2025.08.29 10:15

    [땅집고] “임대사업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임대인이 건물을 포기한다는 건 (거기 사는) 수십 명의 세입자들이 전세사기 피해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땅집고]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 연합뉴스

    지난 21일 한국임대인연합이 주최한 기자회견에 임대 사업자 A씨의 사례가 소개됐다. 수도권 지하철 역세권에 16개 원룸이 있는 건물 한 동을 보유한 임대사업자 A씨. 전국에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에도 7년째 어렵게 임대사업을 해왔다. 건물에 대한 대출은 총 6억원 정도로 운영했고, 월세는 각 호실 당 200만원 수준으로 관리하며 생활해왔다.

    주변에 많은 임대용 건물들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매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과 경계심이 들었지만, A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증금은 꼭 내줘야한다’는 각오로 그간 단 한 번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 가입은 너무 조건이 까다로워서 가입하지 못하고 세입자의 보증금과 대출금 6억원으로 건물값을 충당했다. 이후에 꾸준히 돈을 모아 세입자 보증금도 문제없이 돌려줬고, 전세 호실을 월세로 바꾸는 등 자기자본을 늘려나가며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던 중 지난 8월28일부터 주택금융공사의 전세대출보증 규제가 지금보다 더 강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A씨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규제로 A씨는 당장 3억원이 넘는 전세 보증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임대사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기로에 서게 됐다.

    ◇주금공마저 전세대출보증 126%룰 적용…빌라 임대인 “졸지에 수억원 마련해야”

    26일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HF에 요구한 전세자금보증 주요 제도변경사항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은행재원 일반보증과 무주택청년 특례보증 심사 시 선순위채권과 임차보증금 합이 공시가격의 126%를 초과할 경우 보증이 거절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을 내줄 때 빌라 가격을 정하는 일명 ‘126%룰’(빌라 가격은 공시가격의 140%로 산정하고, 담보인정비율은 90%까지 허용)을 HF도 그대로 따라 적용하는 것이다. HUG는 비아파트 전세대출, 전세금 반환 보증에 이 룰을 적용하는데, HF는 전세대출 보증에만 적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동안에는 세입자가 HF의 전세 대출 보증을 받을 때 집에 이미 설정돼 있던 선순위 담보대출(집주인 대출 등) 이 있더라도, 이를 별도로 합산하지 않고 전세금만 주택가액의 100% 이하이면 보증 가능했다. 앞으로는 선순위대출까지 합쳐 집값의 90%를 넘기면 안 된다.

    예컨대 집값은 3억원이고, 선순위 채권이 2억원인 경우 기존에는 전세금 2억원도 보증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전세금이 7000만원이 넘으면 보증이 거절된다.

    부동산 중개·분석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에 체결된 수도권 연립·다세대 전세 계약의 27.3%가 이날부터 시행되는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새 전세 보증 기준(공시가의 126%)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인이 2년 전과 동일한 전세 보증금으로 새 임차인을 구하려고 할 경우 10곳 중 3곳은 HF 보증서를 이용한 전세 대출이 불가능해진다는 의미다.

    A씨는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린 지난 4년간 주변에 있는 많은 원룸 건물들이 망했는데, 이번 주택금융공사의 조치로 현재 남은 원룸 주택 대부분이 더 이상 전세대출을 받는 세입자를 받을 수 없게 될 것 같다”며 “빠르면 올 가을부터 전부 임대 건물이 경매로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 “가을에 보증금 미반환 사태 다시 시작될 것…빌라 전세 전멸 위기”

    한국임대인연합은 지난 25일 성명서를 통해 “전세사기와 보증기관의 대위변제 문제로 시장 신뢰가 무너졌다”며 “정부와 보증기관이 비아파트 임대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다음 날인26일 오후 3시부터 27일 오후 11시까지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1박2일 철야집회를 열고 정부와 보증기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임대인들은 6.27 대출로 비아파트 임대인들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주장한다. 이미 지난 정부부터 빌라 전세보증 기준을 까다롭게 하면서 전세공급 자체에 타격을 준 것에 이어 이번 정부는 6·27 부동산 대책을 통해 주택담보대출뿐만 아니라 임대인이 받을 수 있는전세 퇴거 자금 대출 한도도 1억원으로 제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80%로 축소했다. 정책자금대출의 전세대출 한도도 기존 2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대폭 삭감했다. 그 결과 임대인들은 신규 세입자를 받을 때 신규 보증금과 기존 보증금 차액을 반환하기 위해 수천, 수억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다시금 확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UG 보증이 워낙 까다롭기 때문에 빌라의 경우 주로 세입자들이 HF 보증을 받아왔는데, 앞으론 이마저도 어려워지게 생겼다”며 “그나마 남아있던 빌라 전세매물은 아예 전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rykimhp206@chosun.com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