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8.16 06:00
[땅집고] “단지 안에 묘가 있는데, 다들 괜찮으신가요…”
지난 달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도심역한양수자인리버파인’. 최고 22층, 12개 동, 전용39~84㎡로 이뤄진 총 980가구 신축 아파트다. 단지에서 도심역 1번출구까지 직선거리가 70m에 불과한 초역세권 입지다. 게다가 산에 둘러싸였다는 점에서 ‘숲세권’ 평가도 받는다.
그런데 최근 이 단지 내부에 무덤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 아파트는 경의중앙선 도심역과 해발 89m 금대산 사이에 ‘ㄷ’자 형태로 지어졌다. 사실상 아파트가 무덤을 둘러싼 상황이 된 것이다.
최근 이 단지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는 A씨는 “단지 안에 묘가 있는데, 다들 괜찮으신가요”라며 가구 내에서 바라본 묘지 사진을 올렸다. 그는 그러면서 묘지가 잘 보이는 동 대신 다른 동을 택했다고 했다.
총 2개 봉분으로 이뤄진 해당 묘지는 104~108, 111~112동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 동에서 발코니나 주방 창 너머로 자세히 봐야 보인다. 다만, 일부 동은 거실이나 방에서 쉽게 발견 가능하다.
이는 단지와 맞붙은 금대산이 조상을 모신 산인 ‘종중산(宗中山)’이라서 벌어진 일이다. 금대산은 와부읍 덕소리와 도곡리, 월문리에 걸쳐 있는데, 조선 초기부터 왕족과 문신들의 무덤이 여럿 있었다.
아파트 한가운데 위치한 봉분 2개의 주인 역시 왕족이다.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4남인 팔계군 이정과 그의 부인이다. 팔계군은 성종의 명으로 덕성군 이민의 계자(系子·대를 이를 양자)로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산군 폭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유배 생활을 했고, 1521년 이곳에 묻혔다.
인근에는 그의 아버지 덕성군, 할머니 신빈 신씨의 무덤도 있다. 이중 신빈 신씨의 묘역은 경기도가 2001년 문화재자료로 지정해 유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신빈 신씨는 태종의 후궁으로, 슬하에 3남7녀를 뒀다.
산 중턱에 있는 조선 세조 시절 문신인 이맹현 선생 묘도 1987년 경기도 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된 곳이다. 유적 안내문과 함께 세워진 표지석, 무덤의 형태가 15세기 조선 전기 묘제와 석물 양식이 잘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금대산에는 조선 초기 문신이자 중종의 장인이었던 박원종 대감의 묘, 능성 구씨 집안의 묘가 있다.
이처럼 묘지 인근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2021년 대방건설과 대광건영, 금성백조가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각각 지은 3개 단지의 경우 공사 과정에서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된 장릉 경관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한동안 공사를 중단했다. 소송을 벌인 결과, 건설사가 승소하면서 이들 단지는 ‘김포 왕릉 아파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아파트 공급자와 다툼을 벌이거나,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1월 경남 창원 북면 감계리 ‘창원 포레힐스 데시앙’에서는 입주 예정자가 사전점검 당시 거실과 침실 창문으로 무덤이 대거 보이는 모습을 촬영한 뒤 SNS에 올린 일이 있었다. 시공사가 입주자 모집 공고 당시 이 같은 내용을 공고문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되면서 태영 건설은 묘지 소유주와 협의해 아파트에서 무덤이 안보이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준공한 경남 거제 상동동 ‘더샵거제디클리브’의 경우 일부 가구 거실에서 묘지가 다수 보였는데, 입주민들이 시행사와 시공사를 상대로 법적 다툼을 예고하면서 화제가 됐다. 거제시가 묘지 관리자인 문중을 설득해 묘를 이장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