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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물폭탄 사태 잊었나…폭염·폭우 시대 재건축은 이렇게 [기고]

  •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입력 : 2025.08.13 13:55

    [기고] 기후 위기 시대, 미래 건축이 가야 할 길 |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땅집고] 올여름도 예외 없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보에 따르면 기온은 이미 35도를 웃도는 날이 많아지고 있으며, 체감온도는 그 이상이다. 기후 변화가 가져온 계절의 극단화는 이제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때 ‘기상 이변’이라 불리던 현상은 이제 우리 일상의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 문제는 폭염만이 아니다. 국지성 호우와 기록적인 폭우가 도시를 마비시키고, 저지대 주거지역과 지하 공간에 거주·이용하는 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여름이면 폭염과 폭우, 두 가지 상반된 기상 재난을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가운데 건축, 특히 주거 환경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두 가지 축, ▲지반조사와 ▲로우 카본(Low Carbon) 건축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 건축의 방향을 제언하고자 한다.

    [땅집고]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올재단) 단장

    폭염은 단순히 더운 날씨가 아니다. 도시 열섬 효과와 맞물려 고령층과 취약계층의 건강을 위협하고, 냉방 수요 증가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해 전력망 부담을 가중시킨다. 반면 폭우는 도시 인프라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불투수 면적이 높은 도심은 빗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하천 범람과 도로 침수, 지하 시설 침수로 이어진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바로 지하수 수맥과 지반 상태다. 폭우가 내릴 때 표면 배수 시설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지반 내부의 물길이다. 지하수 수맥은 보이지 않는 하천과 같다. 수맥의 방향과 흐름, 그리고 지반의 투수성(물이 스며드는 정도)에 따라 건축물의 안전성은 크게 달라진다.

    지하수 수맥 조사는 단순히 ‘물을 찾는 일’이 아니다.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지하철·터널·지하상가 등 지하 공간 개발에서는 지반 안전 진단의 핵심 요소다. 지반 속에 어떤 암반층이 있고, 어떤 토양 구조가 있으며, 그 속을 지하수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조사가 부실하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폭우 시 지하 구조물 침수 ▲건물 기초 침하(Subsidence)로 인한 균열·안전 위험 ▲지하차도·지하철역·지하상가의 급격한 침수 사고 등이다.

    2022년 서울 강남 일대의 ‘물폭탄 사태’에서도 확인했듯, 빗물은 단순히 하수관 용량을 넘어서서 지하수 수맥을 타고 예기치 못한 지점으로 흘러든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 단지나 고층 빌딩은 깊은 기초 공사가 필수이기에, 정밀한 지반·수맥 조사는 안전과 직결된다.

    지반 안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탄소 배출 감축이다. 건설 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37%를 차지한다. 이 중 절반 가까이가 건축물 운영 단계(난방·냉방·전기 사용 등)에서 나오고, 나머지가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최근 국제 건축계에서는 린 카본(Low Carbon) 건축이라는 개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린 카본 건축은 크게 두 가지 전략을 포함한다. 재활용 자재 활용, 현장 콘크리트 사용 최소화, 저탄소 시멘트 채택 등 ‘시공 단계의 탄소 저감 전략’과 고단열·고기밀 설계, 자연 환기·채광 극대화, 고효율 설비 사용 등 ‘운영 단계의 탄소 저감 전략’이다.

    재건축은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다. 한 번 지으면 최소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쓰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건축 기술이 향후 수십 년간의 탄소 배출량을 결정한다.

    혹자는 “지금은 기후 대응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후 대응과 시장 안정은 상충하는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건축이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치를 지키는 길이다.

    폭우·폭염에 견디는 건물은 유지보수 비용이 낮고, 탄소 배출이 적은 건물은 에너지비 절감 효과를 준다. 이는 곧 입주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지역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나아가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시대에 부동산의 가치는 친환경성과 직결된다.

    필자는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으로서, 단지의 지반 안전과 친환경 설계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이 단지는 1980년대 서울 올림픽 준비를 위해 건설됐다. 당시 기준으로는 최첨단 설계였지만, 40년이 지난 지금은 설비와 구조, 에너지 효율 모두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지하 배수 시스템과 빗물 저장·활용 설비, 단열·환기 구조 모두 대대적 개선이 필요하다.

    민간 차원에서 린 카본 건축을 실현하려면, 제도적 지원이 필수다. 예를 들자면 지하수 수맥 조사 비용에 대한 일부 보조, 지하수 수맥 조사 비용에 대한 일부 보조, 저탄소 자재 사용 시 인센티브(용적률 완화, 세제 혜택 등), 재건축 안전진단 항목에 기후 대응 요소 포함, 친환경 건축물 인증 절차 간소화 등이 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가 에너지 비용 절감과 재난 피해 감소라는 투자 효과를 가져온다. 기후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현실이다. 폭염과 폭우는 이제 매년 반복될 것이고, 그 강도는 점점 심해질 것이다. 이를 대비하는 건축은 지반 안전성 확보와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두 축 위에 서야 한다.

    재건축은 단순한 주거 환경 개선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안전망이자 탄소 감축 전략의 실현이다. 오늘 우리가 내리는 설계와 기술 선택이, 2050년의 도시 안전과 기후 대응 능력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은 행동할 때다. 안전을 지키고, 탄소를 줄이며, 기후 위기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정리=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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