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8.05 11:04
[기고] 서울시의 ‘속도전’, 주택공급 정책의 전환점을 기대하며
[땅집고] 서울에서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새 아파트를 짓는 데 평균 18년 6개월이 걸린다는 서울시의 조사 결과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행정의 느림과 복잡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도시계획, 교통영향평가, 교육환경평가, 문화재 조사, 건축심의, 각종 위원회 자문 등을 모두 통과하는 것이 이른바 ‘정비사업’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현재 주택 공급이 가장 절실한 도시임에도, 행정 절차의 복잡성과 심의의 까다로움 때문에 정작 필요한 시점에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에 갇혀 있다.
[땅집고] 서울에서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새 아파트를 짓는 데 평균 18년 6개월이 걸린다는 서울시의 조사 결과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행정의 느림과 복잡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도시계획, 교통영향평가, 교육환경평가, 문화재 조사, 건축심의, 각종 위원회 자문 등을 모두 통과하는 것이 이른바 ‘정비사업’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현재 주택 공급이 가장 절실한 도시임에도, 행정 절차의 복잡성과 심의의 까다로움 때문에 정작 필요한 시점에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지난 7월 24일 발표한 ‘주택공급 촉진 방안’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정책 기조의 전환이다. 속도전이라는 단어는 그간 서울시 행정의 철학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어 보였던 단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정비사업 전체 절차에 대해 구체적인 연도 목표를 설정했고, 그 실현을 위한 조직 개편, 제도 개선, 행정 프로세스 혁신까지 포함되었다. 이는 명백한 ‘실행 선언’이다.
서울시는 평균 18년 6개월이 소요되던 정비사업 기간을 13년 이내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구역 지정에 2년, 조합 설립까지 1년, 사업시행인가부터 이주까지 6년, 착공과 준공까지 4년. 이 수치는 단순히 공무원의 결재 속도를 높이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병목을 해소하는 설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조적 접근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병목의 출발점이 되었던 ‘정비구역 지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주민 동의서 요건 완화, 심의 절차 간소화 등 구체적인 수단을 함께 제시했다. “18년을 13년으로” 서울시, 주택공급 ‘속도전’ 선언다.
기존에는 한 단계를 마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선형적 절차가 기본이었다. 예를 들어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비구역이 지정된 후에야 조합 설립이 가능했으며, 이후에야 비로소 사업시행인가 신청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차를 병행하고, 일정 지연을 막기 위한 제도들을 새롭게 도입하겠다는 방침이다.
그 중 핵심적인 장치가 바로 ‘처리기한제’다. 기존에는 정비구역 지정 단계에서만 적용하던 처리기한제를, 이제는 전 단계로 확대해 사업의 흐름이 어디서 정체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조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서울시가 말하듯 ‘공정 촉진의 알고리즘’을 행정에 이식하는 것이다.
사업지마다 ‘공정촉진책임관’과 ‘갈등관리책임관’을 지정해 추진 과정에서의 병목과 갈등을 조기에 진단하고 조정하는 체제도 도입한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접근이다. 실제로 많은 정비사업이 내부 주민 갈등이나 민원 대응 실패, 혹은 주민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오해로 인해 발목을 잡힌다. 과거에는 “민간에서 알아서 하라”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서울시가 중재자, 촉진자,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방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간 서울시가 너무도 오랫동안 ‘심의의 정교함’에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계획은 섬세해야 하고, 밀도와 용도, 교통과 안전에 대한 고려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행정의 섬세함이 무한한 시간 소요의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절차의 정합성과 투명성은 유지하되, 처리 속도와 실행 가능성이라는 관점을 적극 반영해야만 현실에 부합한다. 서울시가 이제야 이 균형점을 향해 방향을 트는 듯해 반갑다.
무엇보다도 이번 조치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속도전의 실현을 가능하게 만든 서울시 공무원들의 헌신이다. 정책은 정치인이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을 구조화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행정 실무자의 몫이다. 수십 개의 부서와 법령을 오가며 일관된 행정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고, 조합, 주민, 시공사, 구청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하고 조정해야 한다.
특히 서울처럼 고밀도 도시 구조를 가진 곳에서는 한 단지의 용적률이나 높이 변화가 주변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단순한 개발 권장 수준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를 감안하며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실무자의 행정적 창의성과 현실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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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몇 년간 올림픽선수기자촌 재건축을 이끌며 서울시 행정의 복잡함과 한계도, 동시에 그 안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들의 진심도 함께 경험해 왔다. 특히 ‘현장형 행정’에 대한 최근 변화는 분명히 느껴진다. 과거에는 단순히 “요건이 안 된다”는 답변을 받던 것들이,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 보완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으로 바뀌고 있다. 행정이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로 나서는 변화다. 이번 속도전 선언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물론 우려도 있다. 속도를 내다 보면 부실한 설계나 무리한 일정으로 인한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서울시 역시 이에 대해선 품질 확보 시스템을 병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속도와 품질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을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의지가 있는가의 문제다. 서울시가 보여준 기조 변화는 바로 이 균형을 잡기 위한 첫 걸음이다.
서울시의 이번 속도전 선언은 공급 부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타이밍이 핵심인 주택정책의 본질을 다시 짚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행정의 속도를 높이고, 예측 가능한 일정을 제공하며, 갈등을 사전에 중재하고, 시민과 함께 도시를 설계하겠다는 시도는 정책의 진화다. 그것은 느리고 복잡했던 서울 행정의 반성을 기반으로 시작된 변화이자, 도시의 미래를 위한 신호탄이다. 이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정리=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