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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민 상대로 속였나?" 강남구청, 대모산 골프장 기습 강행 논란

입력 : 2025.07.08 06:00

[땅집고] “불과 2년 전에 산사태가 났던 대모산을 깎아서 파크골프장을 짓는 게 말이 됩니까. 사업 예정지로부터 약 500m 떨어진 구룡마을은 작년에도 물난리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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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집고]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 아파트 벽에 대모산 파크골프장 반대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태민 기자

서울 강남구가 관내 대모산에 파크골프장을 짓겠다고 밝히면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구는 초고령화 시대로 어르신이 늘어나는 만큼, 노인 복지 제고 차원에서 해당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모산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고, 이미 강남에 서울 최대 규모 파크골프장이 있다며 사업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강남구, 대모산에 파크골프장·강아지 놀이터 짓는다

4일 강남구청 등에 따르면 구는 지난해 9월부터 대모산 파크골프장과 반려견 놀이터 등을 조성하는 ‘강남 힐링숲 조성(2단계) 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상지는 대모산 해발 60~90m(아파트 20층 높이)지점으로, 총 면적 2만5000㎡다. 산 지형을 계단식으로 다듬어 1만7500㎡ 규모 파크골프장을 비롯해 클럽하우스와 600㎡ 규모 반려견놀이터, 주차장 등을 짓는다.

강남구는 실시설계 용역 발주와 환경·재해 영향평가 등 행정절차를 올해 진행하고, 착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현재는 기초조사와 배치안 계획 등 기본계획 단계로 배수·동선 계획 등 구체적인 설계를 할 예정이다”며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해당 부지는 수십년 전부터 경작지로 쓰였다. 구는 토지 보상을 마친 상태다.

[땅집고] 강남구청이 2025년 1월 발표한 '강남힐링숲조성(2단계)기본및실시설계용역' 주민설명회 발표 자료. 해당 자료에 나온 파크골프장 규모 및 위치. /강남구청

구는 사업 배경에 대해 대한노인회 강남지회 등 어르신 단체가 파크골프장 확충을 제안해 사업을 검토했고, 추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6000여명 어르신이 서명을 제출한 만큼, 수요가 높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땅집고] 강남구청이 2025년 1월 발표한 '강남힐링숲조성(2단계)기본및실시설계용역' 주민설명회 발표 자료. 해당 자료에는 경사지를 계단식으로 다듬겠다는 계획이 나와 있다. 사업 대상지는 해발 60~90m 지점이다. /강남구청

■ “대형 참사 잊었나” 산사태 나면 5500가구 직격타

당초 구는 서울시 예산 20억원을 확보해 나무를 심고 숲길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이를 뒤집고 이른바 ‘대모산 파크골프장’ 사업이 알려지자 일대 주민들이 발칵 뒤집어졌다. 불과 2년 전 장마철에도 대모산이 와르르 무너졌던 만큼, 파크골프장을 건립할 경우 산사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대모산의 경우 14년 전, 66명 사상자를 기록한 우면산 산사태 발생 당시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사업지인 대모산 북측은 가파른 지형이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와 ‘디에이치아너힐즈’ 등 신축 아파트 5500여가구가 접하고 있어 산사태 발생 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대상지에서 동북쪽으로 약 500m거리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장마철마다 물난리를 겪고 있다.

[땅집고] 사업 예정 부지 위치 표시도. /강남구청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입대의 대표 김혜정씨는 “산사태가 났던 산을 깎아 파크골프장을 만드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라며 “파크골프장의 경우 전국을 뒤져도 산에 있는 것을 어려울 정도로 어르신이 다니기 편한 평지에 짓는 게 보편적”이라고 했다. 이어 “저희 단지 어르신 중에는 우면산 산사태로 이웃을 잃고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분들이 있다”며 “대모산을 깎아 파크골프장을 짓는다는 소식에 잠을 못 이루신다”고 했다.

반면, 강남구청은 경사지를 깎는 게 아니고, 해당 지점에서 산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강조했다. 산사태 가능성이 낮다는 입장이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소재 '탄천파크골프장' A코스의 모습. /강남구청

■ 서울 최대 규모 골프시설 있는데, 1% 위해 또 짓는다

주민들은 강남에 이미 서울 최대 규모 파크골프장이 있는 점도 구청의 파크골프장 건립 사업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강남구는 지난해 6월 탄천 일대 총 2만4552㎡(7440평)에 걸쳐 27홀 규모 파크골프장을 열었다. 홀수와 면적 모두 서울 22개 파크골프장 중 최대 규모다. 강동구와 성북구, 용산구 등 10개 구는 파크골프장이 없다.

[땅집고] 건국대 산학협력단이 작성한 '강남구 체육발전 기본방향 수립 연구' 강남구체육회 체육 종목 단체 현황. 파크골프 참여 인원은 436명으로, 배드민턴과 테니스, 축구, 당구, 걷기에 이어 6위에 올랐다. /강남구 체육진흥 연구회

일각에서는 일부 노인의 복지를 위해 수십억원 세금을 투입하는 게 정당하냐는 의견도 나온다. 강남구 노인 인구 대비 파크골프 회원 수는 1% 남짓하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강남구 내 동호회가 있는 체육 종목은 45개로, 참가 인원은 1만9630여명이다. 이중 파크골프 회원 수는 436명에 불과하다. 강남구는 최근 3개월 사이 이 인원이 800명 수준으로 늘었다고 보고 있다.

김형곤 더불어민주당 강남구의원(개포1·2·4동)은 “현재 강남구 노인(65세 이상) 인구가 8만600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어르신 중 0.5~1%가 파크골프를 하는 상황”이라며 “강남구가 나서 파크골프를 육성하는 것을 전체 어르신 복지 제고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양재대로에서 사업 부지 방면을 바라본 모습. /강태민 기자

■ “안 짓겠다며!” 구청 거짓말에 속은 강남 주민 뿔 났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강남구가 대모산 인근 주민들에게 파크골프장을 짓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달리, 관련 예산을 통과시킨 것으로 드러나 주민들의 불만이 더욱 거세졌다.

‘개포프레지던스자이’ 주민 김모씨는 “구청 고위 관계자가 ‘대모산 파크골프장 안 할 테니, 시위를 멈춰 달라’고 부탁하더니, 구의회에 가서 ‘예산 원안대로 해달라’고 하더라”라며 “이는 55만 명 강남 구민을 상대로 한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은 관계자는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그렇게 전달했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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