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6.21 06:00
[기고] 아파트 짓자고, 산 깎자니…서울시가 착각한 한 가지 |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땅집고] 오늘 서울시 공무원 한 명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을 깎고 그 자리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합니다.' 기막힌 발상이다.
[땅집고] 오늘 서울시 공무원 한 명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을 깎고 그 자리에 임대주택을 지어야 합니다.' 기막힌 발상이다.

이 발언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자연과 생명을 얼마나 값싸게 취급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산을 흙더미 쯤으로, 숲을 그냥 빈 공간쯤으로 보는 듯하다. 환경은 '공간'이 아니라 '기능'이다. 그 산은 여름엔 도시를 식히고, 겨울엔 바람을 막으며, 비가 오면 물을 가두고, 사람에게는 쉼터를 주는 복합 생태기반시설이다. 그걸 없애고 임대주택을 채우겠다고? 집을 짓는 대신, 수십만 시민의 여름을 찜통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도시의 온도를 조절해주는 구릉지 활엽수림을 잘라낸다는 건, 곧 서울 전체를 ‘열섬 도시’로 내모는 일이다. 수도권은 이미 여름 평균기온이 30도를 넘고, 한밤에도 27도를 밑돌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마지막 그늘마저 제거한다면, 에너지 소비는 폭증하고, 노약자와 어린이는 실내에서조차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단지 아파트 몇백 세대가 아니라, 서울의 생태안전망 1,000겹을 찢는 것이다.
더구나 그 산은 비가 내릴 때 물을 붙잡는 ‘저수지’다. 숲은 비를 토양으로 흘려보내고, 지하수로 돌린다. 그게 사라지면 물은 도로로, 아파트로 흘러 넘친다. 도시 침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다. 그 공무원의 한마디는 결국 배수관 하나 더 파자고 수천억짜리 자연배수시설을 없애자는 주장이다.
미세먼지, 탄소, 폭염, 침수… 오늘날 서울의 환경 위기는 단지 기후 때문이 아니다. 무분별한 개발, 안일한 공직자의 사고가 진짜 원인이다. 도시는 기술로만 운영되지 않는다. 생명으로 작동한다. 숲은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살아있는 도시 기반시설이다. 그걸 없애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부으면, 잠시 표는 나겠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얼마 안 가 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그 산을 복원해야 할 것이다. 왜냐고? 자연은 결국 되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그것을 늦게 깨닫는다.
문제는 임대주택이 아니다. 임대주택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위치와 방식이 문제다. 왜 하필이면 산인가? 서울 시내 곳곳의 유휴 부지, 저이용 공공부지, 주차장, 재건축 대상지 등 선택지는 많다. 하지만 행정은 가장 손쉬운 답을 택했다. 자연을 희생시키는 것이 ‘쉽다’는 이유로 말이다.
■ 산 깎고 임대주택 짓자? 개발이 아니라 설계가 필요해
서울시가 진정 시민을 위하고, 생태도시를 말한다면, 최소한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개발보다 더 깊은 사유, 숫자보다 더 넓은 시야 말이다. 활엽수림은 지표면 위의 공기청정기이자 천연 차광막이다. 그 산 하나를 없애는 건, 도시 하나의 품격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몇 백 세대’는 들어설 수 있을지 몰라도, 그곳에서 숨 쉴 시민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개발이 아니다. 설계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지혜, 숲을 보존하면서도 주거를 공급할 수 있는 해법. 그러나 서울시의 이번 발언은 그런 상상력을 보이지 않는다. 산을 깎자는 그 한 문장은, 서울의 미래에 대한 몰이해와 무관심이 응축된 함축이다.
우리는 묻고 싶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공무원의 임기 동안 잠깐 지어진 건물인가, 아이들과 노인이 살아가는 터전인가. 지금 그들이 깎고자 하는 산은 수십 년이 지나야 다시 자란다. 그러나 그들이 짓겠다는 아파트는 30년도 안 되어 재건축 대상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의 차이를 기억하자. 자연은 한번 없애면, 끝이다.
우리는 서울시에 요구한다. 산을 지켜라. 활엽수를 지켜라. 시민의 여름, 공기의 질, 도시의 지혜를 지켜라. 지금 깎겠다는 그 산이야말로 서울의 마지막 자산이다. 오늘의 잘못된 결정이, 내일의 서울을 불모지로 만들 수 있다. 행정은 효율이 아니라, 책임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정리=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