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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야심작 '이것', 오히려 재건축 패스트트랙 발목 잡은 이유

    입력 : 2025.06.09 06:00

    [땅집고]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는 6월 4일부터 일명 ‘재건축 패스트트랙’이 시행된다는 소식에 사업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정비구역이 지정, 고시되기 전에도 조합설립을 추진할 수 있게 돼 사업 기간을 2~3년가량 단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관할 구청에 조기 추진위원회 설립 절차를 문의하니 돌아온 답변은 “서울시의 공공지원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관련 가이드라인과 예산이 없으니 기다려야 한다”였다.

    재건축 패스트트랙으로 불리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서울시는 공공지원제도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의무화했다. 그러나 정작 가이드라인은 내놓지 않고 있어 재건축, 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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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의 취지가 재정비 사업의 속도를 높여주기 위함인데, 공공지원제도 현재 상황은 지자체는 예산이 없으니 몇 개 단지만 순서를 정해서 지원해주겠다고 하는 상황”이라며 “또 관련 지침이 마련된다고 해도 선택 사항이던 것이 의무화되면서 재건축 사업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밝혔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조선DB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시가 정비사업 공공지원제도를 정비구역 지정 전 조기에 추진위를 구성하는 데에도 의무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서울 전역에서 최소 수십 곳 이상의 정비사업 현장에서 초기 추진위 설립을 신청할 것으로 보이지만, 시의 가이드라인, 예산 마련 등이 지연됐다.

    이달 4일부터 시행한 도정법 시행령 개정안은 재건축 절차를 간소화하는 일명 ‘재건축 패스트트랙’으로 불린다. ‘안전진단’을 ‘재건축진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 재건축진단 없이도 재건축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뿐 아니라 정비구역 지정 이전에도 조합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는 요소 중 하나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2010년부터 시행 중인 정비사업 공공지원제도 적용 범위도 넓힌다. 정비구역으로 지정, 고시되지 않은 지역도 공공지원 의무 대상이 된다. 시의 제도에 따라 각 자치구는 예비 추진위원장을 선임하고 지원업무를 맡을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지원한다.

    그러나 일부 사업장에서는 공공지원제 확대가 민간 정비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공지원 예산 확보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부 계획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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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올해 시와 각 자치구 예산에는 정비구역 지정 후 추진위 구성을 위한 공공지원 예산만 편성돼 있다. 조기 추진위 지원을 위해서는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

    노원구, 강남구, 송파구 등은 예산이 부족한 지역 재건축 사업이 지연될 위기에 처했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부 자치구에서는 현재의 예산 안에서 조기 추진위 설립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시가 막아섰다. 서울시 도시정비 조례에 따르면, 추진위 구성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에 대해서는 자치구 재정력에 따라 70% 이내에서 보조금을 교부하도록 했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도정법 시행령 개정은 지난해 연말부터 예고돼 있었는데, 아직도 예산이나 관련 지침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공공지원제를 선택이 아닌 의무로 만들어놓았는데, 이런 식이면 ‘패스트트랙’이 아니라 ‘슬로우트랙’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정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공공지원제도 가이드라인은 지난 5일 각 자치구 관련 부서에 하달했고, 예산은 곧 시의회 상임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있는 등 추경 편성 절차를 밟고 있다”며 “향후 각 지역 재정비 사업을 진행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땅집고] 서울시 정비사업 공공지원제도 개요. 도정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공공지원 시기는 정비구역 지정, 고시일 전 조합설립추진위원회로 앞당겨진다./서울시

    당초 공공지원제도는 재정비 조합의 전문성 부족, 내부 갈등 등으로 인한 사업 장기화 등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재정비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공공이 개입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 주요 입지의 아파트 재건축을 주도하는 주민들의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공공지원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강남권, 목동, 여의도 등 지역에서는 건설, 도시정비 등 관련 업계 출신 주민들이 중심돼 재건축을 추진하는 사례가 많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서울의 한 단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서울시는 공공지원제도로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도록 하겠다는데, 오히려 늑장 행정으로 재건축 패스트트랙이 무색해졌다”며 “차라리 자체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단지들에 한해 공공지원과 민간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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