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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군대식 '돌관공사' 없다" ..현대건설이 10조 공사 포기한 속사정

입력 : 2025.05.29 06:00

[땅집고] 장비와 인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돌관공사’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던 현대건설이 “정부가 충분한 공사기간을 주지 않아 10조 공사라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건설업계의 큰 형님 현대건설이 저가 출혈수주, 무리한 공사일정을 강요하는 정부의 관급공사 관행에 철퇴를 가했다.

원자재 가격 급등, 인력난, 중대재해법이 겹치면서 ‘싸게, 빨리, 대충’의 한국 건설관행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땅집고] 부산 강서구 일대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는 최근 부산 강서구 대항동 일대에 건립을 추진 중인 가덕도 신공항의 부지 조성 계약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수의계약을 중단하는 절차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현대건설은 30일 입장자료를 통해 “공항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무리한 공기 단축 요구와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공사철수를 공식 선언했다. 현대건설이 포기한 난공사에 도전할 국내 건설사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가덕도 신공항 사업의 무기한 착공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현대건설(25.5%)가 주도하고 대우건설(18%), 포스코이앤씨(13.5%) 등이 참여하고 있는 컨소시엄은 입찰공고에서 제시한 공사기간인 7년(84개월)보다 2년 긴 9년(108개월)이 필요하다는 기본설계 계획을 제출했다. 여기에 부지 조성 공사비를 기존 10조5000억원에서 1조원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국토부가 설계보완 요구를 했지만,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국가계약법상 시공자는 정부가 내걸었던 조건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 때문에 추후 재입찰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조건을 변경해도 업계에서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공사가 지연될 것으로 보고 있어 당초 계획했던 2029년 가덕도 신공항 개항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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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9년’ 밀어붙인 尹 탄핵되자 눈치보기 끝?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가덕도 신공항 사업권을 결국 포기하게 된 배경에는 정권 변화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되던 사업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무산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때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등 내용의 특별법이 제정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2030년 엑스포의 부산 유치를 위해 개항 시기를 기존 2035년에서 2029년 말로 무리하게 앞당겼다. 활주로와 터미널 등을 먼저 지어 2029년 12월 우선 개항한 뒤, 착공 7년 후인 2031년 완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에도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12월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의 2029년 개항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올해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자 현대건설 컨소시엄으로서는 더 이상 정부의 보조를 맞출 필요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에 현대건설 관계자는 “가덕도 신공항 기본 설계 돌입한 건 계엄 이전인 2024년 10월이라 탄핵 결과와는 무관하다”며 “정권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설계 검토 결과 무리한 공사 일정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땅집고] 2023년 12월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에 참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연합뉴스

■ 부실시공-중대재해 리스크 피하기 위해?

공사 난이도가 높다는 점도 시공사 측이 가덕도 신공항 사업의 기존 계획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다. 공항 예정지 전체 면적 중 59%가 바다를 매립해야하는 공간이다. 수심이 깊고, 점토질로 구성된 연약지반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땅을 다져야 한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대규모 매립 공사에서 기초를 다치는 케이슨 공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는데, 수중 구조물인 케이슨을 설해 거치하는 기간만 해도 7개월인 걸린다. 이후 매립한 땅을 다지는 기간도 약 18개월이 걸린다. 무리한 공사로 공사 투입 인력의 안전이 위협받거나, 개항 이후 활주로 일부가 내려앉는 등 부실시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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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로서는 무리한 공사를 진행해 중대재해 리스크를 떠안을 필요가 없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년 6월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현상 건물 붕괴 사고로 인해 서울시로부터 받은 8개월 영업정지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영업정지 처분을 유지하는 1심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으나, 5월 21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됐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지하터널 공사장 붕괴사고로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받았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항, 항만, 설계 전문인력이 6개월간 설계 검토한 결과 84개월 공기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최적의 품질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 기간이 108개월”이라며 “정치적인 요소, 중대재해 리스크 회피, 공기 미준수로 인한 손해배상 위험 등이 아닌 기술적인 부분을 검토한 결과”라고 밝혔다.

[땅집고]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사옥. /현대건설

■ 관급공사 손절 분위기?…“기술적 검토-전체 파이 작아진 결과”

업계에서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가덕도 신공항 공사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 관급공사를 함부로 수주하지 않겠다는 건설업계의 선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관급공사의 경우 최근 공사비 상승 흐름 속에서 적정 공사비가 반영되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22~2023년 정부 발주 공사의 유찰률은 68.8%에 달했다.

지난해 6월 GS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포기한 위례신사선 사업을 통해 가덕도신공항 사업의 앞날을 가늠할 수 있다. 2020년 GS건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지난해 6월 공사비 증액을 두고 서울시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후 시는 공사비를 올리고, 공기 연장, 사업제안자 자격조건 완화 등 사업조건을 개선해 수차례 입찰 공고를 냈지만, 모두 유찰됐다. 결국 민간투자사업에서 재정투자사업 방식으로 변경을 추진 중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관급공사 특성상 공사비 증액, 공사기간 연장 등 시공사에 새로운 유인책을 제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현대건설과 다수의 건설사들이 함께 했음에도 공사를 포기할 정도면 재입찰에 참여할 업체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관급공사에 대한 전체 파이가 줄었을 뿐이지 수주를 꺼리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노선, 대장홍대선 등을 추진 중이고, 최근까지고 꾸준히 수주하는 등 기술적 검토를 거쳐 대형 관급공사에 참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raul1649@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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