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5.28 17:54
[기고] 서울 도심 경관의 새로운 해석 – 텐트형을 넘어 니들 타워로 |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장
[땅집고]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도로, 하수도, 전력망, 교통 시스템이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일자리와 산업 단지, 상업시설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기억에 남고, 나아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도시의 미학’이다.
[땅집고]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도로, 하수도, 전력망, 교통 시스템이 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일자리와 산업 단지, 상업시설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기억에 남고, 나아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도시의 미학’이다.

도시 미학의 핵심은 건축물에서 출발한다. 특히 고층 건축물은 도시의 얼굴이자 아이덴티티가 되며,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스카이라인은 도시의 미래를 상징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높이가 아니다. 바로 ‘매스’(mass), 즉 건축물의 덩어리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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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는 건물의 부피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요소다. 같은 높이라도 건물의 폭이 넓으면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지고, 폭이 좁으면 날렵하고 가볍게 느껴진다. 이 점에서 최근 고층건축의 트렌드는 ‘니들 타워’(needle tower)로 수렴하고 있다. 니들 타워는 이름 그대로 바늘처럼 가느다란 고층 건물을 의미하며, 좁은 바닥 면적에 수직으로 길게 올라가는 형태다.
니들 타워는 왜 중요한가. 그것은 사람에게 덜 위협적인 스케일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에 폭이 60~80m에 달하는 광폭 건물이 늘어서 있으면, 이는 보행자에게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햇빛을 차단하고, 바람이 막히며, 위압적인 인상을 형성한다. 반면, 니들 타워는 주변에 여백을 남기고, 시야를 열어주며, 하늘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해 준다.
서울시가 ‘텐트형 배치’를 고집하는 이유는 대로변의 시각적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건물의 높이보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폭이다. 대로변에 낮고 폭이 넓은 건물을 배치하는 것보다, 폭이 좁고 높이가 있는 건물을 리듬감 있게 배치하는 것이 오히려 시각적 해방감을 줄 수 있다.

니들 타워는 도시 스카이라인의 리듬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건물마다 높이와 폭, 외관이 다르고, 이들이 나란히 서 있을 때 도시는 단조로움을 벗어나 활기를 띠게 된다. 특히, 니들 타워 외벽에 적용하는 다양한 입면 디자인과 LED 조명은 도시의 밤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바늘처럼 솟은 구조물들이 다양한 색의 조명으로 채색되면,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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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빅토리아 하버, 두바이의 다운타운, 뉴욕 맨해튼의 미드타운, 그리고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는 모두 니들 타워가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 덕분에 세계적인 도시 브랜드를 확보했다. 이들 도시는 야경 관광 산업의 중심지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퍼뜨린다.
이제는 한국도 변화할 때다. K-컬처, K-푸드, K-콘텐츠를 통해 한국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K-아키텍처, 즉 한국의 도시 건축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획일적이다. 도시계획은 규제 중심이고, 건축물은 효율성 중심이다. 이 구조에서는 글로벌 인구를 유입하고, 창의적 인재를 끌어모으며, 관광산업을 확장할 수 없다.
니들 타워는 단순한 건축 트렌드가 아니라, 도시 전략이다. 그 자체로 예술이고, 콘텐츠이며, 상징이다. 니들 타워에 화려한 조명을 입히고, 그것이 도시의 대표 야경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든다면, 도시는 그 자체로 산업이 된다.
예를 들어, 서울의 강남 테헤란로 일대나 여의도 금융지구에 니들 타워 중심의 고층 스카이라인을 조성하고, 외관 디자인을 한국 전통 문양 또는 K-팝 콘텐츠와 연계하여 설계한다면 어떨까. 건물 하나하나가 브랜드가 되고, 미디어 파사드를 활용한 야간 공연이 가능하다. 이를 보기 위해 외국 관광객이 모여들 것이다. 도시의 하늘이 또 하나의 무대가 되는 셈이다.
도시의 매력은 밤에 더 빛난다. 낮에는 모두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밤이 되면 조명이 켜지고, 빛이 흐르며, 도시의 표정이 달라진다. 이때 니들 타워는 그 자체로 빛을 위한 캔버스가 된다. 얇고 수직적인 외벽은 조명 디자이너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흐르는 빛, 색의 변화, 움직이는 이미지까지 모두 표현 가능하다.
도시 설계자와 건축가는 이제 ‘높이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가 아니라, ‘높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텐트형 배치는 평탄하고 안전한 선택일 수 있지만, 그것이 도시에 생동감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도시의 미래는 상상력과 미학, 그리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에서 시작된다.
또한, 니들 타워는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좁은 부지에 수직으로 건축함으로써 토지 이용 효율이 높고, 1층에서 수백 층까지 빠르게 수직 이동이 가능하다. 이는 도시 내에서의 고밀화를 수용하는 동시에, 도시 외곽으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는 효과도 있다. 탄소 중립 시대를 대비하여 친환경 건축 기술과 접목한다면, 니들 타워는 지속가능한 미래 도시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
결국, 니들 타워는 건축을 넘어 도시 경쟁력의 척도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땅을 더 많이 활용하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도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전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된다. 한류가 음악과 드라마를 넘어, 도시의 풍경과 건축에서도 드러날 수 있도록, 우리는 더 높은 상상력을 건축에 담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도시계획은 기능, 규제, 안전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도시가 사람을 부르고, 감동을 주고, 기억에 남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니들 타워’다. 건물의 폭을 줄이고, 하늘로 솟아오르며, 화려한 조명을 입힌 그 건축물이야말로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