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5.21 14:11 | 수정 : 2025.05.21 15:26
[기고] 왜 싱가포르와 홍콩은 '텐트형' 아파트 배치를 택하지 않았는가 |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땅집고] 싱가포르와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보면, 건축물의 높낮이가 고르게 변화하며 도시의 리듬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고저차는 시각적 흥미를 자극하며, 입면 디자인과 조명 설계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한다. 낮과 밤, 해질 무렵과 새벽녘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도시가 지루하지 않고 살아 있는 느낌을 주는 이유다.
특히, 마리나 베이 샌즈를 중심으로 펼쳐진 싱가포르의 도심 스카이라인은 건물의 위치와 높이, 외관 디자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강변을 따라 도시적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낮에는 고층 유리 빌딩이 햇살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밤에는 건물 외벽을 따라 설계된 조명들이 빛의 파동을 연출한다. 이 조명은 단순히 밝히는 역할이 아닌, 도시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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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형 배치는 일견 질서 있고 통일감이 있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도시 스카이라인을 단일한 경사로 만드는 것은 시각적으로 단조롭고,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외부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글로벌 도시에서는, 경관의 리듬감과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 리듬감이란 단순히 높이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물 간 간격, 외벽 소재의 변화, 조명의 색과 간격, 그리고 수면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와 반사광까지 모두 포함된다.
도시 설계는 결국 ‘사람이 머무르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 공간이 단순히 주거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방문객에게 기억에 남을 인상을 주고, 사진을 찍고 공유하게 만들며, 나아가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도시는 야경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조명 페스티벌을 유치하며, 도시의 미관 자체를 경제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은 왜 이러한 접근을 택하지 못하는가? 혹은 택하지 않으려는가? 물론 일조권, 조망권, 소음, 통풍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규제 중심의 도시계획만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없다. 오히려 도심 개발과 재건축, 재개발을 통해 도시의 얼굴을 다시 그려야 하는 시점에서는, 글로벌 도시들과 경쟁할 수 있는 미학적 전략이 필요하다.
건축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첫 줄에 위치한 건축물’이다. 대로변에서 보이는 첫 줄의 고저가 전체 단지의 인상을 결정한다. 이 첫 줄의 스카이라인을 낮춰 텐트형으로 만들면, 단지 내부의 고층들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시각적 임팩트가 사라진다. 반면, 다양한 높이의 건물을 첫 줄에 배치하고, 그에 어울리는 조명과 입면 디자인을 적용하면, 전체 단지의 개성이 살아나고 도시의 야경 품격이 높아진다.
앞으로 서울도 고밀화와 고도화를 피할 수 없다면, 미관과 풍경을 고려한 전략적 고저 배치를 고민해야 한다. 획일적인 높이 제한이나 평면적인 배치 대신, 고저 리듬과 건물 간의 여백, 조경과 조명의 활용을 통해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싱가포르와 홍콩이 텐트형 배치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도시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고저 리듬을 이용한 스카이라인은 단순한 건축 배치를 넘어서, 도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고, 관광 자원이 되고,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된다. 서울도 이제는 ‘기능’ 위주의 도시계획을 넘어서, ‘미감’과 ‘리듬’, ‘경관의 가치’를 중심에 둔 새로운 도시 전략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정리=pkra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