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5.09 06:00
[땅집고] 경기 구리시 신축 아파트가 20년 전 있었던 한 지역주택사업의 족쇄에 시달리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지주택은 손실을 볼 가능성이 워낙 높아서 ‘원수에게 권하라’고 불리는 사업 형태다. 다만, 해당 지주택 조합의 경우 200억대 보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구리시는 지주택 사업 보상 문제를 내세워 2년째 준공을 미뤄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 구리 새 아파트, 입주 직전에 ‘이사 불가’ 통보받은 이유
논란이 불거진 곳은 경기 구리시 인창동 ‘인창칸타빌더헤리티지’다. 지하2층~지상25층, 총 5개동, 전용 59~84㎡로 이뤄진 총 375가구 규모다. 대원건설이 시행과 시공을 맡아 전 가구 분양했다. 부동산 시장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던 2020년 8월 청약해 전 가구가 1순위 완판했다.

그런데 2023년 3월 초 입주 직전, 계약자들은 ‘준공이 안 나서 입주가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 주택 피해자의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구리시가 준공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임시사용승인을 받아 입주 대란을 피했으나, 올해 4월까지 준공 승인을 받지 못했다.
수분양자들은 입주자모집공고문에 관련 내용이 없다며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입주민 A씨는 “문제가 있는 땅이라면 구리시가 건설사의 분양 사업을 막았어야 하지 않나”라며 “구리시 공무원은 ‘법적으로는 준공 승인을 해줘야 하나, 도의적으로 해줄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손꼽아 입주를 기다렸다는데, 입주 당일 이사를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화가 났다”고 덧붙였다.

■ 20년 전 망한 지주택, 건설사에 200억 보상금까지 받았다
아파트 준공을 가로막은 건 20년 전 이곳에서 아파트 사업을 추진하던 ‘세영지역주택조합(세영지주택조합)’의 민원이다. 2003년 당시 세영지주택조합은 이 일대에 있던 단독주택과 세영빌라 부지를 합쳐 아파트 단지를 지으려 했다.
그러나 조합 내부 갈등과 조합장 구속 등으로 인해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조합 설립 2년이 지난 후에도 사업 성과가 없을 경우에는 지자체가 직권으로 조합을 해산할 수 있으나, 구리시는 딱히 이 사업에 손을 대지 않았다. 결국 이 땅은 조합이 380억원 규모 PF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서 공매에 넘어갔다.
사업 실패 후폭풍은 상당했다. 조합에 돈을 빌려줬던 4개 저축은행 중 3개 은행은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로 나섰던 신일건업(당시 기업명)은 세영지주택 아파트 분양 실패 이후 상장폐지했다.

땅은 2016년 대원건설에 넘어왔다. 대원건설은 230억원에 땅을 낙찰받았는데,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토지 낙찰 대금 외에 지주택 조합원들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203억원을 지급했다.
대원건설 관계자는 “공매 낙찰 당시 지주택 조합원들의 민원이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지주택 조합원에게 돈을 줄 의무가 없으나, 2004년 지주택 사업 당시 감정 평가 금액을 토대로 총 203억원의 위로금을 줬다”고 했다. 이어 “그러나 일부 지주택 조합원의 경우 추가 보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50억원가량을 소진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 ‘수백억 보상금 어디로’ 피해 규모 파악 못 한 구리시
구리시는 지주택 피해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보상을 빌미로 새 아파트 준공을 미뤄온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주택 조합원이 보상을 제대로 못 받았다며 여전히 불만을 제기하는 이유다.
구리시의회 회의록에 따르면 시의회는 피해 보상 금액이 약 271억원, 피해자들이 받은 금액을 103억원으로 보고 있다. 이와 달리 백경현 구리시장은 피해자를 위한 지급액이 위로금 120억, 부지 매입비 20억, 소송비 28억, 기타비용 10억원 등을 합해 총 총 178억원이지만, 조합원 상당수가 보상이나 위로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했다.

입주민들은 ‘구리시로 인해 재산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준공 불가, 토지 소유권 확보 실패로 인해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부의 저리 대출 상품 가입이 제한되는 데다, 다른 주택담보대출로도 대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원건설 역시 구리시의 소극적 행정 행위로 매년 수억원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준공 지연으로 인해 전 가구에 지체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 재판부 “구리시 처분 적법하지 않아”
법원은 구리시의 준공 승인 반려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대원건설이 2023년 구리시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 결과문을 보면 1심 재판부는 ‘시청의 전체사용검사 행정처분에 세영지주택 보상 문제를 조건으로 달 수 없다’고 했다.
구리시는 지난해에는 ‘공사완료 이후 사업계획 변경 신청’을 절차적 하자로 보고 준공 승인을 반려했다. 그러나 이 역시 ‘적법하지 않다’는 판결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사업주체 법인 일부 변경, 부지 면적 및 사업비 일부 조정은 거부될 일이 아니다’며, 대원건설과 입주민 손을 들어줬다.
구리시는 지난해 11월에도 사업비 변경, 지주택 피해 보상 등 자료 등을 보완하라며 준공 승인을 반려했다. 구리시 관계자는 ‘인창칸타빌더헤리티지’ 준공과 관련해 질의하자 “준공 여부 내부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 입주민 시위·취재 시작하자 ‘준공 승인’한 구리시
그러다 올해 3월 말 구리시는 최근 취재가 이어지고, 입주민 150여명이 최근 구리시청에 찾아가 준공 승인을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하자 이 단지 준공을 승인했다.
이 단지 입주자들은 늦게라도 준공 승인을 받아 다행이라면서도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입주민 김모씨는 “구리시가 잘못해서 세영지주택조합원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면 시가 해결해야 하는데, 구리시는 그간 입주민 재산을 볼모로 추가 보상을 요구했다”며 “결국 우리 입주민들은 새 아파트를 청약받았다가, 2년 동안 고통을 받았던 셈”이라고 했다.
이어 “임시 사용 기간에는 아파트 땅이 건설사 소유라서 땅이 다른 곳에 넘어가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