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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 가로수길이 공실 폭탄으로…'임대료 600억' 애플 입점의 역설

    입력 : 2025.05.06 06:00

    [땅집고] 한때 가로수길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편집점포가 줄지어 들어서고 트렌디한 카페와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입점한 서울 대표 상권이었는데요. 뉴욕의 소호, 파리의 샹젤리제, 도쿄의 긴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애플의 가로수길 입점이 그 정점을 찍었는데요. 애플의 입점은 단순히 글로벌 기업의 매장이 들어서는 것이 아닌 가로수길이 서울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부각되는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애플 효과’는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상권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시작점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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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월 한국 최초의 애플스토어가 가로수길에 입점했습니다. 애플은 이 부지를 장기임차하며 20년치 임대료로 무려 600억원을 지불했죠. 1년에 30억원, 월 임대료로 환산하면 약 2억5000만원입니다. 가로수길 역사상 가장 비싼 임대계약입니다. 당시 같은 면적 주변 시세를 고려하면 월 1억, 비싸면 1억5000만원 정도였는데요. 그보다 약 두 배 비쌌던 겁니다.

    이 계약은 상징적인 의미가 컸습니다. 가로수길이 서울의 중심 상권이자 한국에서 가장 프리미엄한 거리라는 선언과도 같았죠. 애플은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애플 스토어’를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닌 브랜드 경험의 거점으로 삼습니다.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전략으로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에 대형 매장을 열고 브랜드의 철학을 공간으로 구현합니다.

    [땅집고] 애플스토어가 2018년 국내 처음으로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입점했다./강태민 기자

    한국 진출 당시, 명동·코엑스·홍대 등이 거론됐지만 가로수길은 특히 젊고 감각적인 브랜드들이 모여 있던 ‘핫플’이었고 외국인 관광객 유입도 활발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애플이라는 초대형 테넌트의 입점이 주변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오히려 가속화했습니다. 애플이 들어선 이 가로수길의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일제히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애플 따라 임대료를 대폭 올리면서 월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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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집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대로변 1층 상가에 임대문의가 붙어있다. 건물 전체가 통임대로 나온 매물도 있다./강태민 기자


    임대료 상승은 가로수길 상권에 치명타였습니다. 2019년 라인프렌즈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철수하더니 국내 1호 '커피스미스' 카페 매장도 문 닫았습니다. 특히, 패션 브랜드들에게 임대료 상승은 줄폐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자라, 에잇세컨즈, H&M, 포에버21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이 줄줄이 가로수길에서 철수합니다. 매출은 줄고 임대료는 오르니, 남는 장사가 아니게 된 거죠.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면서 일반 자영업자에서 대기업으로 임차인이 바뀌는데요. 높아진 월세로 대기업마저 손을 털고 나가는 순간 상권은 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애플은 수익보다는 애플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한국 고객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즉 ‘상징성’ 차원에서 과감하게 투자했습니다. 연 30억원에 달하는 임대료는 본사에서 전략적으로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죠. 반면 일반 브랜드나 로컬 상점들은 ‘상업적 수익’을 목표로 입점한 곳들입니다. 같은 무대 위에서 애플처럼 싸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로수길 애플스토어 연 임대료 30억원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금액이었습니다. 애플이 입점한 다른 나라들은 대형 유동인구와 상업 집중도가 높은 도심 메인 거리에 입점했습니다. 반면, 가로수길은 상권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과열된 금액으로 계약했습니다.

    가로수길 상권이 면적 등을 고려하면 강남역·홍대·이태원 등 서울 다른 상권과 비교해 결코 큰 상권은 아닙니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가들은 가로수길 상권이 조금씩 하락세를 보이는 시점에 애플스토어가 생기면서 오히려 상권에 치명타가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건물마다 공실 딱지가 즐비합니다. 현재 가로수길 점포는 10곳 중 4곳이 비어있습니다. 지난해 가로수길 공실률은 39.4%를 기록했습니다. 공실률 40%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찍은 겁니다. 강남 20%, 청담 17.4%, 홍대 14.4%, 한남·이태원 11.5% 등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땅집고]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가로수길 상권의 공실률은 39.4%로 집계됐다. 서울 주요 상권 공실률과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그래픽=이해석


    자라(ZARA)의 창업주,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부동산 투자로만 수십조 원을 번 ‘투자의 귀재’로 유명합니다. 그는 2016년 가로수길 한복판 건물을 325억원에 매입했습니다. 해당 건물은 대지면적 457㎡, 지하 1층~지상 5층, 연면적 1241㎡ 규모입니다. 2012년부터 10년간 자라의 경쟁사인 패션 브랜드 H&M이 장기 임차 계약을 맺고 건물 전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입 10년이 채 되기도 전인 올해 3월 300억원에 매각했습니다. 강남 빌딩에 투자했지만 25억원을 손해본 겁니다. 부동산 자산이 오를 수밖에 없던 시기였음에도, 가로수길은 예외였습니다. 그것도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시기였는데 말이죠. 매입 10년도 안 됐는데 손해를 감수하고 판 만큼 가로수길 상권을 어둡게 전망하고 있는 건데요. 그만큼 가로수길 상권이 급격히 매력도를 잃었다는 뜻입니다. 오르테가의 빌딩 매각을 부동산업계에서는 가로수길 쇠퇴의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평가합니다.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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