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4.27 06:00
[땅집고] "2006년에 4억400만원 주고 분양받았어요. 집값이 3억2000만원이고, 나머지는 골프장 분양해준다고 시설 선납금으로 1억원 가까이 냈죠. 명문사학인 명지학원이 직접 운영한다고 하니 그거 믿고 분양받은 게 컸어요. (‘명지엘펜하임’ 수분양자 오 모씨)
2004년 경기 용인시 처인구 함박산 자락에 ‘고품격 실버 주거단지’를 내세우며 분양에 나선 실버타운 ‘명지엘펜하임’. 당시 수분양자 대부분은 노후를 명지아펠하임에 걸었다. 기독교 명문 사학재단 ‘명지학원’이 직접 운영한다고 했고, 호텔식 서비스, 9홀 골프장 설치, 의료 연계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모든 시설 및 서비스 운영이 멈춘 채 ‘고립타운’이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2004년 경기 용인시 처인구 함박산 자락에 ‘고품격 실버 주거단지’를 내세우며 분양에 나선 실버타운 ‘명지엘펜하임’. 당시 수분양자 대부분은 노후를 명지아펠하임에 걸었다. 기독교 명문 사학재단 ‘명지학원’이 직접 운영한다고 했고, 호텔식 서비스, 9홀 골프장 설치, 의료 연계까지 약속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모든 시설 및 서비스 운영이 멈춘 채 ‘고립타운’이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입주민 오 모씨(85)는 2006년 당시 가장 큰 평형인 57평짜리 매물을 4억400만에 분양받았다. 오 씨는 "처음엔 식사도 나왔지만 점점 줄더니 지금은 식당 자체가 아예 없어져 십시일반으로 차려먹고 있다”면서 “사실상 일반 아파트 단지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명지엘펜하임 내 식당·사우나·수영장 등 시설이 몰려 있는 복지관은 2021년부터 셧다운 상태다. 복지관 출입 자동문은 굳게 닫혀 있고 경사 심한 단지 구조로 인해 설치한 단지 내부 엘리베이터도 전면 중단됐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경사로를 힘겹게 오르내리는 실정이다.
명지엘펜하임은 분양 당시 42~57평형으로 구성됐고, 전체 336가구를 1평(3.3㎡)당 670만원 선에 공급했다. 명문 사학인 ‘명지학원’ 아래 명지건설이 분양한다는 점도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고 분양률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약속했던 골프장 공사는 용인시로부터 인허가를 받지 못해 삽조차 뜨지 못했다.
수분양자들은 명지엘펜하임의 분양이 사실상 '사기분양'이라고 주장한다. 실버타운으로 분양 받았지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없고, 골프장 건설에 따른 분납금을 지불했지만, 그마저도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수분양자 33명은 명지학원을 상대로 19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서울고등법원은 “분양금을 반환하라”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인당 4억3000만원씩 돌려주라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명지학원은 끝내 돈을 갚지 못했고 피해자들은 학원에 대해 파산 신청을 냈다. 수도권 중견 사학재단이 부동산 투자 실패 하나로 무너질 뻔한 사건이었다. 그 여파로 명지대학교를 비롯한 재단 소속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몰렸다.
명지학원의 몰락은 학생 피해로 번질 가능성이 컸다. 결국SGI서울보증이 회생 신청에 나서면서 작년 7월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올해 1월 인가를 받아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명지학원은 1700억원에 달하는 부채 해소를 위해 엘펜하임 등 수익형 부동산 매각을 추진 중이다. 매각 주관사는 삼일회계법인이다.
실버타운이던 명지엘펜하임은 현재 일반 아파트처럼 임대 운영되고 있다. 2019년부터 명지학원은 ‘태광엘펜하임’이라는 민간 업체에 운영을 맡겼다. 태광 측은 “처음 운영을 맡았을 땐 ‘공동묘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시설이 방치됐었다”면서 “이후 리모델링 등 조치를 마치고 운영을 재개했지만 복지시설 운영을 멈추는 대신 관리비를 낮추자”는 입주민 다수의 요구가 있어 시설을 폐쇄했다고 설명한다.

초기 분양자 중 실거주하는 인원은 10가구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요양원으로 옮겨갔고, 남은 이들은 처분조차 못 하는 자산을 안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엘펜하임이 노유자시설로 등록돼 일반 매매나 임대가 어려워 사실상 공실로 방치된 매물이 훨씬 많다”면서 “시설이 노후해 급매로 나와도 실제 거래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부동산 투자 실패가 아닌 제도적 감시 실패 사례로 본다. 실버타운은 입주자 특성상 더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한 상품인데, 분양 후 관리 책임은 모호하고, 위탁 운영을 민간에게 떠넘기다보니 발생한 참사라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학재단 브랜드에 기대어 분양을 한 뒤, 정작 운영은 무책임하게 방치한 전형적인 구조적 사기”라며 “고령자 대상 부동산 상품의 등록요건과 사후 관리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