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4.11 06:00
[땅집고] 서울 신축 아파트 상가가 몸값을 낮춰도 시장에서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상가 수요가 줄어든 데다, 경기 침체 여파 탓이다. 업계에서는 ‘아파트 상가 시대가 끝났다’는 부정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 아르테온 학원 건물, 가격 30% 낮춰도 안 팔린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단지 내 3층짜리 상가는 이런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곳이다.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초역세권인 데다, 반경 500m 이내에 총 8개 단지가 있어서 1만8000여 가구를 배후 수요로 둔 항아리 상권 안에 있지만, 5년째 문이 닫혀 있다.


이 상가의 경우, 가격을 수십억원 낮춰도 산다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5번의 공고를 내는 사이 가격이 127억원에서 83억원으로 34% 하락했지만, 여전히 시장에서는 매수자를 찾지 못한 채 외면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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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가격을 낮춰도 나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상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 학원만 가능한데, 학원 차는 못 타는 곳이라니?
상가 매각이 불발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 상가의 경우 사용 조건이 한정적이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이 건물 용도는 교육연구시설 중 학원이다. 영어유치원이나 수학 학원 등 교육을 위한 건물로 써야 한다. 소유주가 도서관(교육연구시설)이나 의료시설, 판매시설 등으로 용도를 바꿀 수 있다. 다만, 면적 기준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인근에는 오래전부터 명일동 학원가가 자리잡고 있다.

아파트 출입구 인근이 아닌 단지 한가운데 위치한 것도 단점이다. 상가 앞에 차도가 있으나, 주차가 불가능하다. 이 상가의 경우 반경 500m 이내에 ‘고덕그라시움’ ‘고덕자이’ 등 대단지가 많아서 배후 수요가 1만8000가구에 달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파트 입주민을 제외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셈이다.
이 건물이 특수한 조건을 적용받는 이유는 당초 유치원으로 설계한 곳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합은 일조량 부족으로 교육청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용도를 유치원에서 학원으로 바꿨다.
상가 통매각이 불발되면서 조합 부담은 매년 커지고 있다. 자산을 다 처분하지 못하면 조합 해산이 어렵다. 실제로 고덕주공3단지 재건축조합은 상가 매각이 미뤄지면서 여태 해산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직원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등을 꾸준히 내야 하는 상황이다.

■ 당일 배송 서비스 늘자 아파트 상가 종말
업계에서는 상가 매각 실패 사례가 도미노처럼 일어난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파트 상가는 통상적으로 아파트보다 평당 가격이 비싸 경제 영향을 많이 받는데, 현재 상가 시장은 경기 침체로 여파로 잠잠하다. 소비 패턴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상가 수요가 감소한 측면도 있다. 온라인 플랫폼의 당일 배송 서비스 등 단지 내 상가를 대체하는 서비스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강남에서 입지가 좋은 아파트 신축 상가도 매각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올해 6월 입주하는 메이플자이의 경우, 상가 213호실 중 조합원 소유 물량을 제외한 59호실을 통매각하기로 했지만, 매수자 찾지 못했다. 헬리오시티, 올림픽파크 포레온 등이 상가 문제로 인해 골머리 쓰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탄핵 정국과 경기 침체로 인해 상가 시장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동안 아파트 상가 매각 실패 사례가 도미노처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