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4.07 06:00
[땅집고] 여성 의류 브랜드 요하넥스 등을 론칭하며 국내 40년 넘은 의류업체 세미어패럴이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연면적 6000평(1만9800㎡)짜리 사옥을 매각했다. 인수자는 코리빙하우스 ‘맹그로브’를 운영하는 디벨로퍼 엠지알브이(MGRV).

엠지알브이는 이 사옥을 임대주택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엠지알브이 혼자 개발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엠지알브이(MGRV)는 세계 10대 연기금 중 하나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 Investments)올초 임대주택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했다.
이 조인트벤처는 약 5000억원 규모로 조성되며 지분의 5%는 MGRV가, 95%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가 보유한다. 이 JV는 최대 1330억원을 투입해 영등포 의류업체 사옥과 같은 건물 등에 투자해 서울의 주요 업무지구와 대학교 인근의 임대주택을 개발할 계획이다.
최근 글로벌 투자회사들이 앞다퉈 한국 임대주택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외국의 투자은행과 연기금, 부동산 회사 등이 국내 주택 시장을 잘 알고 있는 한국 기업들과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을 벌이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울 전월세 집주인이 외국계 투자회사가 되는 셈이다.
■ 서울 ‘월세 100만원 시대’…글로벌 대자본까지 움직여
이번 투자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가 한국 주거 시장에 직접 투자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는 세계 10대 연기금 중 한 곳으로 운용자산(AUM) 규모는 2024년 9월 기준 총 6751억캐나다달러(한화 약 685조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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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상장 및 비상장 주식, 부동산, 인프라 등에 투자하고 있다.
엠지알브이(MGRV)는 다양한 유형의 임대주택을 기업형으로 개발해 공급·운영하는 통합 주거 플랫폼 디벨로퍼로 2018년 설립됐다. 공유 주거 서비스인 코리빙 하우스, 스테이, 워크앤스테이션 등 새로운 형태의 임대주택을 공급했고, 숙박 시설 등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종로구 숭인동 코리빙 하우스 맹그로브 숭인을 오픈한 이후 신설, 동대문, 동대문, 숭인 등 사업을 확장해 국내 6개의 지점(1200여명 규모)을 보유 중이다. 연간 공실률 5% 미만으로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비슷한 기업으로 국내 홈즈, SK디앤디 등의 회사가 있다. 이들 회사들이 국내에서 공유주거 브랜드로 자리잡은 이후 최근들어 글로벌 자본과 만나 몸집을 키우는 모습이다.
소피 반 우스터롬(Sophie van Oosterom)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부동산 부문 대표는 “이번 조인트벤처 결성은 한국 주거 시장에 진출하는 좋은 기회로, 인구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 지역에서 고품질의 주거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조강태 엠지알브이 대표는 “한국 임대주택 시장의 높은 성장 가능성과 엠지알브이의 글로벌 경쟁력이 입증되었다”며 “커뮤니티 중심의 공간을 확대 공급해 나가며 생태계 혁신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임대 수익만으로 투자 불확실…외국계 자본에 임대시장 빼앗길 우려도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투자회사(리츠), 시행사, 보험사 등이 임대주택을 20년 이상 장기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형 장기 임대주택’ 방안을 발표했다. 기업이 대규모 장기 임대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 임대료 규제를 풀고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35년까지 기업형 임대주택을 10만가구 이상 공급할 계획이다.
부동산 개발 시장에서는 이번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외국계 자본의 국내 임대주택 시장 진출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임대 기간이 20년 이상으로 긴데, 임대료만으로 수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땅값, 공사비 등이 치솟는 상황에서 리츠나 재무적투자자(FI)의 참여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에선 외국 거대자본이 단기적인 수익만 추구하는 경우 국내 주택 투기 세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겨 실거주자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0~20년간의 집값 변동이 전혀 수익성에 반영되지 않고, 임대료 상한 등에 묶이면 불확실성만 커지는 셈”이라며 “외국계 자본까지 합세하는 경우 개인 임대사업자 및 중소형 국내 임대사업자들이 시장에서 밀려나고 임대료 상승을 더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