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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뷰 집이 햇빛 없는 집으로" 재건축 단지 '텐트형 배치'가 뭐길래 [기고]

  • 글=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입력 : 2025.04.01 09:12 | 수정 : 2025.04.01 14:47

    [기고] “일조·조망권 다 뺏겼다” 10년째 같은 서울시 재건축 설계 기조 바뀌어야
    [땅집고]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올재단) 단장

    [땅집고] 서울시는 최근 재건축 단지의 도시 경관 개선을 이유로 ‘텐트형 배치’라는 10여 년전 확립한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대로변 아파트는 저층으로 계획하고, 단지 내부로 갈수록 고층을 배치해 마치 텐트를 펼쳐놓은 듯한 형태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외부에서 보이는 건물의 덩어리감(mass)을 낮춰 시각적 부담을 줄이자는 도시미학적 접근에 기반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주거환경과 거주자의 삶의 질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방향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필자는 현재 재건축을 이끌며, 서울시가 제안한 이 ‘텐트형’ 배치가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단순히 미관이나 경관의 측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 텐트형 배치는 일조권 확보에 불리하다. 대한민국 공동주택의 전통적인 배치는 남향 중심이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고 겨울철 일조량이 주거 쾌적성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에서는, 남향 일조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에너지 효율, 건강, 삶의 질과 직결되는 요소다.

    하지만 텐트형 배치는 단지 중앙부에 고층 건물을 세우고, 외곽은 저층으로 배치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층 건물의 그림자가 단지 내부는 물론 외곽 저층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많은 세대가 일조권 침해를 겪게 되고, 이는 재건축을 통해 얻고자 했던 주거환경의 개선이라는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게 된다.

    둘째, 조망권의 측면에서도 텐트형 배치는 아쉬움이 크다. 국민 소득이 높아지고 삶의 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올라가면서, 현대의 주거 공간에서 조망은 점점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특히 대로변은 조망 확보에 있어 가장 유리한 위치다. 탁 트인 시야와 채광, 개방감은 해당 세대의 주거 만족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부동산의 자산 가치까지 좌우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기조대로 대로변을 저층으로 제한하고, 조망권 확보가 어려운 내부 세대를 고층으로 배치하면, 오히려 조망권이 필요한 위치에서 그 권리를 박탈당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제로 대로변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는 한강 조망, 공원 조망 등 도시적 자원을 최대한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중한 자원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외부에서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경관만을 위해 설계가 이뤄진다면, 이는 과연 누구를 위한 도시계획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셋째, 텐트형 배치는 도시 맥락상 비효율적일 수 있다. 대로는 도시의 주요 동선이자, 상징적 공간이다. 도시 설계에서 대로변은 상업, 업무, 주거 기능을 조화롭게 배치하며 도시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에 의도적으로 저층 주거지만을 배치한다면, 대로가 가진 상징성과 기능이 축소될 수 있다. 반대로 대로에 고층이 들어서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가로 공간의 리듬감도 더욱 풍부해진다.

    필자는 재건축을 추진하며, 실제로 많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눠 왔다. 주민들은 재건축을 통해 보다 나은 일조, 쾌적한 조망, 그리고 현대적인 설계를 통한 주거환경 개선을 기대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형식적 경관 논리만을 앞세운 기조가 계속된다면, 오히려 주민들의 이러한 기대는 좌절될 수 밖에 없다.

    물론 도시 경관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지역,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며, 주민들의 주거 만족과 괴리된 경관은 결국 도시의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좋은 경관이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서울시는 도시 외관의 미학뿐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에 주목해야 한다. 재건축은 단순히 노후한 아파트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의 역사와 공동체의 미래, 그리고 거주자의 삶의 질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경관, 일조, 조망, 교통,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조율해야 한다. 특정한 설계 형태를 일률적으로 강제하거나 유도하기보다는, 개별 단지의 여건과 주민의 요구를 존중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 계획은 ‘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글=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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