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24 11:20
[기고] 예술적 아파트는 왜 불가능한가…재건축에 갇힌 공공성의 프레임 |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

[땅집고] 재건축과 재개발은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낙후한 지역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공공성을 요구받는다. 이는 단순히 민간 개발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해 균형 있는 도시 발전을 도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재개발을 진행하면서 외부의 자본이 유입돼 기존 원주민들이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 밀려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에 따라,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임대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공급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임대주택 비율 강제 조항과 더불어, 임대주택의 건축 비용을 기본 건축비보다 낮은 표준건축비로 설정하는 등의 정책은 건설업계와 개발업자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어, 건축의 예술성을 극대화하는 것도 하나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그 자체로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외부 방문객을 유입시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가 보다 개방적인 공간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단순히 거주 공간을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도시 환경과 문화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건축의 공공성을 논할 때, 세계적인 건축가 루이스 칸의 철학을 참고할 수 있다.
그는 유럽을 여행하며 다양한 건축 양식을 연구하고, ‘건물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확립했다. 그의 건축물은 절제된 형태 속에서 영감과 사색의 공간을 창출하며, 빛과 공간을 활용한 독창적인 디자인을 통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선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기능적인 공간을 넘어, 건축물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에는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 건축물이 얼마나 존재하는가? 과거의 개발 논리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개방적인 공간을 지닌 아파트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아파트 단지는 높은 담장과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지역 사회와 단절된 형태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방성과 디자인적 가치를 고려한 건축이 이루어진다면,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는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고, 주민들에게도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의 도시 개발이 공공성을 강조하면서도 획일적인 정책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공공성이 곧 임대주택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임대주택 공급을 통한 사회적 형평성 확보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건축의 질을 높이고 도시 공간을 보다 개방적이고 조화롭게 설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공공성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개선을 넘어서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커뮤니티 공간을 확대하고, 문화적·예술적 요소를 도입하며, 보행자 친화적인 거리 조성과 자연과 어우러진 녹지 공간을 조성하는 것도 공공성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를 더욱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주민 간의 소통을 촉진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단순한 주거 공간 개선을 넘어,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더욱 지속 가능한 개발이 될 것이다. 루이스 칸이 빛과 공간을 활용해 건축의 본질을 탐구했던 것처럼, 한국의 건축도 이제는 공공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아름답고 개방적인 건축물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공동체 형성을 촉진하며, 궁극적으로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글= 유상근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