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16 06:00

[땅집고] “우리나라에 돼지 수십만마리가 입주하는 ‘돼지아파트’가 생긴다고요? 기괴하기도 하고, 효율적일 것 같기도 하고…”
최근 충청남도가 돼지고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중국의 기술을 빌려 신개념 돈사를 짓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수천평에서 수만평 땅에 돼지를 사육하는 방식의 일반적인 돈사 대신, 마치 아파트처럼 생긴 건물에 수십만마리 돼지를 넣어서 키우는 이른바 ‘돼지아파트’, ‘돼지빌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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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아파트’ 프로젝트는 올해 2월 김태흥 충남도지사가 중국 양상그룹 및 자회사인 수잉과학기술유한회사와 양돈빌딩 건설과 관련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충남도와 돼지아파트의 인연은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도지사는 충남도의 스마트축산복합단지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던 중 중국 광둥성에 있는 AI 양돈빌딩 건설 현장을 방문하게 됐다.

이 양돈빌딩은 1998년 사료회사로 출발해 식품·양돈 기업으로 도약한 중국 양샹그룹이 개발한 신개념 돈사다. 최고 7층 높이로 외관상 사람이 사는 아파트나 오피스 빌딩처럼 생겼는데, 내부에 스마트 기술을 적용해 돼지를 맞춤형으로 사육·도축·가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양상그룹 측은 이런 돼지아파트가 외부와 내부를 완벽히 차단해 전염병이나 악취 없이 대규모로 돼지를 사육할 수 있는 최첨단 미래형 돈사라고 주장한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돼지아파트가 일반 돈사보다 뛰어나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필요한 축산 부지가 일반적인 돈사 형태 대비 90% 줄고, 노동 효율성은 10배 정도 증가한다는 것.
쾌적한 환경에서 자란 덕분인지 돼지들도 더 많은 자손을 출산하고 있다는 것이 양상그룹 측 설명이다. 통계에 따르면 돼지아파트에서 자란 모돈(母豚)은 1마리당 연간 자돈(子豚) 생산량이 28.8마리로 우리나라(21.6마리)보다 7마리 정도 많다. 더불어 모돈 1마리당 연간 비육 출하량 역시 27.5마리로 국내 평균인 18.6마리보다 약 9마리 많은 등 효율성이 높다는 것.
김 도지사는 “충청남도는 앞으로 양복을 입고도 출퇴근할 수 있는 스마트 축산 산업을 이끌어나갈 계획”이라면서 “1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축산농가를 지원하고, 지속적으로 도내 축사시설 현대화를 도모해 나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런 돼지아파트 형태의 돈사는 중국에서 이미 익숙하다. 양상그룹 측의 7층 높이 돼지아파트보다 더 큰 26층 규모 돈사도 있을 정도다. 후베이성 어저우시에 2020년 8월 착공해 2022년 8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연면적 40만㎡ 규모에 연간 생산량은 돼지 60만 마리, 돼지고기 생산량은 5만4000t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충남도가 중국의 아이디어를 빌려 돼지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퍼지자 반응이 정반대로 엇갈리는 분위기다.
먼저 국내 돈육 소비량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효율적으로 돼지고기를 생산해내기 위한 충남도의 새 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이미 닭의 경우 계육농장이 비슷한 공장형 건물로 조성돼있기도 한데, 이런 방식이 더 위생적이고 동물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돼지아파트 형태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반응도 눈에 띈다. 도심에 돼지로 꽉 찬 건물이 생기는 것 자체가 기괴하게 느껴진다는 것. 특히 동물권 단체에서도 돼지아파트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
동물단체 카라는 논평을 통해 “돼지를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아 가둬놓는 것은 생명 경시의 극치”라면서 “기존 농장의 10% 수준의 부지에서 노동 효율성을 10배 끌어올린다는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는데, 콘크리트 바닥으로 이뤄진 제한된 공간에서 돼지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극도로 제약되고 면역력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첨단 시스템을 적용하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몇십만마리 돼지를 사육하면 질병 감염의 위험은 커질 수 밖에 없고, 발병 관리 차원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돼지가 도태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