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09 06:00

[땅집고] 골프 비성수기인 지난 동절기에 그린피를 대폭 할인하는 골프장들이 나왔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 일부 골프장에선 겨울특가로 1인당 그린피 4만원부터 충청권은 3만9000원까지 내렸습니다. 이 가격은 성수기 대비 약 80% 할인된 금액인데요.
‘다시 없을 특가’, ‘동반자 1인 무료’. 최근 골프 애호가라면 많이 봤을 홍보 문자입니다. 골프업계가 코로나 유행기 황금기를 보내면서 무리하게 인상한 요금이 부메랑이 돼 급격한 침체에 빠졌는데요. 골프장 인수금액도 크게 하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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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피·카트피·캐디피 급등…주말엔 인당 40만원
골프업계는 2020년을 기점으로 약 3년 동안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코로나 확산으로 사회 전반은 마비됐지만 나홀로 호황인 곳이 바로 골프장이었습니다. 실내 활동이 제한돼 야외 활동에 대한 욕구가 뿜어져 나왔고 골프장 이용객 증가로 연결됐습니다. 야외에서 하는 골프는 안전한 스포츠로 인식이 됐습니다. 게다가 해외 여행길이 막혀 해외 라운딩이 불가능해져 국내 골프장으로만 이용객이 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프장 연 매출이 홀당 3억~4억원이었던 것이 코로나19 시기엔 홀당 8억~1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젊은층도 대거 가세를 했는데요. 필드에서 골프를 즐기는 건 물론 패션 감각을 뽐내며 사진을 찍고 SNS에 자랑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라운딩을 가서 사진을 찍기 위해 옷만 3~4벌 갈아입는 골퍼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골프장들은 '물 들어오니 노 젓자'는 식으로 그린피, 카트피, 캐디피 등을 마구 올렸습니다. 가격을 올려도 부킹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니 당연히 가격을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골프 인구도 500만명이 넘었습니다. 그린피와 캐디피 그리고 카트피와 식음료 등 모든 것이 올랐는데요.
코로나19 이전 평일 기준 7만~8만원 그린피를 받던 곳이 20만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8만원이던 카트피는 10만원이 넘기 시작했고요. 캐디피도 2만~3만원 상승했습니다. 그린피로 기본적으로 나가는 금액만 20여만원입니다. 여기에 카트 대여료와 캐디 봉사료, 라운딩 전후 식사비 등이 추가로 포함됩니다. 주말 라운딩을 즐기려면 1인당 최소 40만원을 써야합니다.
그늘집 음식 가격도 사악해졌습니다. 치킨은 5만원, 해물 떡볶이는 4만7000원. 이런 식입니다. 골퍼 입장에서는 그린피는 물론 그늘집 음식 등 각종 부대비용 가격 부담이 커진 겁니다.
■대기업 법인카드 제한…해외로 떠나는 골퍼
그런데 지난해부터 골프산업이 휘청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골프장 내장객이 감소하고 매출이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지난 여름에는 내장객이 급격하게 감소했는데요. 폭우와 폭염이 길게 이어진 탓입니다.
가장 선호도가 높은 가을철인 지난해 10월, 11월 성수기에도 골프장 예약이 수월했습니다. 그동안 요금이 오르는 속도와 폭이 지나쳤다는 여론이 확산됐습니다. “이건 좀 심하다”고 느껴지던 차에 때마침 위기가 찾아온 겁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코로나가 종식됐고요. 경기 불안이 겹치며 골프 열기가 빠르게 식었습니다.

국내 골프장은 코로나 호황을 누릴 때 그린피와 각종 비용을 크게 올리는 등 수익은 극대화하면서도 서비스는 그에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불만이 커진 거지요. 과거 해외 골프는 주로 국내 골프의 비수기인 겨울에 주로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국내 골프장의 성수기로 꼽히는 봄과 가을에 해외 골프를 떠나는 골퍼도 늘고 있습니다. 2박 3일 일정만 잡아도 일본이 제주도보다 더 저렴하고 가성비를 따지면 해외 골프가 국내서 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겁니다.
게다가 최근 기업들이 골프장 법인카드 결제를 제한한 것도 골프산업이 위기에 놓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골프장들은 매출 3분의 1을 법인카드에 의존하고 있어 대기업들의 법인카드 사용 자제 확산은 골프장 수익감소로 직결됩니다.
■일본 18홀 150억, 한국은 1홀에 160억…10배 차이
골프업계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지면서 국내 골프장 M&A 역시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대개는 골프장 가격을 설명할 때는 ‘홀당 가격’으로 말합니다. 코로나19 특수로 가격이 폭등했던 골프장의 매매가도 지난해부터 반토막 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포스코는 인천 송도에 위치한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을 약 3000억원에 인수했습니다. 홀당 인수가는 160억원으로 국내 골프장 거래 역대 최고가를 갱신했습니다. 2022년엔 홀당 100억을 넘어 160억원까지 치솟았던 가격이 지난해에는 홀당 70~80억 정도로 내려간 금액으로 거래됐습니다.
최근 태영건설이 매각한 경주 루나엑스CC 골프장은 홀당 81억원에 매각됐습니다. 18홀 기준으로 1500억원입니다. 대한제당이 보유했던 충남 공주 프린세스GC는 홀당 60억원에 거래됐습니다.
일본 골프장이 18홀 기준 150억원 안팎, 홀당 10억이 채 안되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골프장 가격이 여전히 비싼 셈입니다. 즉, 코로나 시기 국내 골프장 한 홀 가격이 일본 골프장 18홀 가격과 맞먹었습니다. 일본 골프장은 버블 경제 시절 2000여개까지 늘어나 공급 과잉을 겪었습니다.

최근엔 젊은 층도 골프시장에서 대거 이탈했는데요. 젊은 층이 지나치게 비싼 골프를 버리고 다른 취미들로 돌아섰습니다. 가성비 좋은 취미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겁니다.
골프 산업 전반에 실적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골프웨어 시장도 대표적인데요. 골프에 입문했던 MZ세대가 점차 흥미를 잃자 골프복 브랜드들도 잇따라 철수하는 모습입니다. 한세엠케이의 주력 골프 사업 부문인 LPGA와 PGA는 매장 수를 기존 28개에서 20개로 축소했습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메종키츠네 골프와 LF의 랜덤골프클럽은 론칭 1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2022년 4조2500억원에 달했던 국내 골프웨어 시장 규모는 2023년 3조7500억원, 2024년 3조4500억원으로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팬데믹 특수가 끝나면서 국내 골프업계 전반이 침체입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자산운용사를 통한 매각도 잇따랐는데요. 이제는 국내 골프장 투자도 꺼리는 분위기입니다. 반면, 해외 골프장 M&A는 호황입니다. 국내 골프장 대비 낮은 인수가격 높은 기대수익률 등이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으로 자금이 몰립니다. 전 연령층에 걸쳐 골프 이용횟수가 줄면서 올해가 골프 시장 생존과 쇠퇴 갈림길에 서있는 상황입니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