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06 06:00
[땅집고] 이지스자산운용이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서울시 건축심의 조건에 따라 원형 보존하기로 했던 기존 호텔의 메인 로비(아트리움)를 엉뚱한 모습으로 둔갑시킨 설계안으로 인허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는 작년 7월 신축 건물의 판매시설 지상1층~지하 1층에 기존 로비의 계단과 기둥 형태, 재료를 최대한 보존한 새 로비(헤리티지 로비)를 조성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지스 측은 이 조건을 어기고 로비를 건물외부에 지하1층~지하 2층으로 땅속에 완전히 파묻는 설계안으로 변경해 작년 12월 말 사업시행인가를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인허가권을 쥔 중구청이 서울시 심의 조건을 무시하고 인허가를 내준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작년 7월 신축 건물의 판매시설 지상1층~지하 1층에 기존 로비의 계단과 기둥 형태, 재료를 최대한 보존한 새 로비(헤리티지 로비)를 조성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지스 측은 이 조건을 어기고 로비를 건물외부에 지하1층~지하 2층으로 땅속에 완전히 파묻는 설계안으로 변경해 작년 12월 말 사업시행인가를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인허가권을 쥔 중구청이 서울시 심의 조건을 무시하고 인허가를 내준 배경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힐튼호텔을 설계했던 김종성 건축가를 비롯해 건축업계는 메인 로비를 지하화하는 것은 건축적 가치를 크게 훼손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존 힐튼호텔 부지에는 지하 10층~지상 39층, 연면적 33만8982㎡ 규모 업무시설과 호텔, 상업시설 등을 결합한 대규모 복합시설이 들어선다. 사업시행자는 이지스자산운용, 현대건설, KB국민은행 등이 참여한 와이디427피에프브이(PFV)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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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에 파묻힌 메인 로비, 도대체 무슨 일이…
이지스측은 지난해 12월24일 양동구역 제4-2·7지구(힐튼호텔 부지)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에 대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땅집고가 5일 입수한 최종 설계안에 따르면 당초 원형 보존 취지를 최대한 살려 지상 1층~지하 1층에 조성하려던 새 로비는 지하 1층~지하 2층으로 설계가 변경된 것으로 확인됐다. 새 로비 천장 위에는 콘크리트가 덮여 완전히 땅속에 묻힌 형태가 된다. 이 때문에 새 로비는 지상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별도 계단을 통해야만 만날 수 있다.
더구나 헤리티지 로비는 신축 건물의 업무시설이나 숙박시설 내부가 아닌 현재의 지상 주차장 부지에 별도로 조성한다. 지하 통로를 통해 신축 업무·숙박시설과 연결은 하지만, 특정 건물 내 로비 기능은 완전히 상실하는 셈이다.

서울시는 원래 작년 7월 도시계획위원회 통합심의 당시 힐튼호텔 로비는 역사적·건축사적 가치를 살려 원형을 보존하기로 했다. 신축 건물의 판매시설에 지상 1층~지하 1층의 기존 로비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지상층을 외부 개방형 녹지와 연결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지상층에서 로비가 훤히 보이고 접근도 가능했다.

건축업계에서는 중구청이 원형 보존이 반영되지 않은 설계안에 사업시행인가를 내준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건축역사학회는 지난달 발표한 성명에서 “힐튼호텔 최종 설계안은 지금까지 원형 보존 논의를 무색하게 공간적 속성을 크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로비를 지하로 완전히 내려 사실상 보존 의미가 퇴색했다는 것이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인허가 과정에서 어떻게 설계가 바뀌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전시품처럼 형태만 유지할 뿐 보존의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했다.

■건축업계 “건축가치 훼손…민간업자 이익이 우선인가”
건축업계에서는 민간 사업자의 이익을 우선시한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구청이 이지스측에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 대한 보완을 요청하지 않고 사업자 측 입장만 일방 수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시 권고를 무시한 것인지, 사업자 측 입장을 수용한 것인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건축물은 공공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보존과 관련해 충분한 협의가 필요하다.
중구청 관계자는 “김종성 건축가와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전문가 의견을 반영한 결과 최초 정비계획안과는 달리 지하화하는 형태가 됐다”고 했다.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개방형 녹지 지상 1층에 건축물이 있을 경우 유사 시 대피 등과 관련한 우려가 제기돼, 원 건축가와 서울시 심의위원 등의 의견을 반영해 설계를 바꾼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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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종성 건축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종성 건축가는 “당초 협의 진행과는 완전히 정반대 설계가 나왔다”며 “동의 없이 설계안이 바뀌어 분개하고 있다”고 했다.

1983년 개관한 힐튼호텔은 한국 호텔 산업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특히 김종성 건축가가 계획·조성한 호텔 로비(아트리움)는 층고가 높고, 브론즈·대리석 등 재료로 마감해 우아함과 장중함이 드러난다. 1986년 서울시 건축상 금상을 받았다. 당시 한국 건축계의 독자적인 역량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을 구현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힐튼호텔은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므로 원형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이에 단순 철거 후 신축이 아닌, 건축문화적 가치를 유지할 방안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이뤄졌다.
이번 힐튼호텔 재개발은 최근 미국이나 일본 도심에서 로비나 파사드 등 역사적 건축물을 남기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건축계 관계자는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로비는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면서 “일본 도쿄역 마루노우치도 역사적 건축물 중요한 공간을 다 남겨놨다”고 했다. 일본은 마루노우치를 재개발하면서 2차 세계대전 전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을 복원하고, 메이지 시대의 독특한 돔형 지붕을 원형 그대로 복구했다. /hong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