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3.04 06:57 | 수정 : 2025.03.04 13:50

[땅집고] “2주 동안 달랑 티셔츠 한 장 팔았어요. 상가 한 칸 월세 30만원에 관리비가 35만원 나오는데 관리비라도 벌어야 하니 꾸역꾸역 나올 수밖에 없죠.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늘고 있다고 하는데 동대문으로는 돌아올 생각이 영 없는가 보네요.” (동대문 ‘굿모닝시티’ 상가 주인 A씨)
지난달 13일 찾은 서울 동대문 ‘맥스타일’ 복합 쇼핑몰. 지하 1층~지상 8층 규모 상가에서 영업을 하는 층은 지하 1층과 지상 1·3층뿐이다. 그마저도 절반가량은 공실로 방치된 상태이다. 상가에 머문 한 시간 동안 상가를 찾은 방문객은 다섯 명 정도였는데, 그 중에서도 물건을 구입하는 방문객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맥스타일에서 만난 50대 여성 방문객 최 씨는 “예전에는 합리적인 가격에 살 만한 국산 옷들이 꽤 많았는데 이젠 중국산만 깔려있다”면서 “백화점 옷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니 차선책으로 단골집을 찾긴 하지만 오늘도 살 만한 물건이 없어 빈손으로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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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률 86%…전기 요금 미납으로 공급 정지 예고까지
2000년대 초반까지 중저가 의류를 찾는 방문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최근 공실률은 86%까지 치솟았다. 동대문 일대 상가 중에서도 가장 높다. 동대문패션타운특구 협의회에 따르면 맥스타일 내 점포 2653곳 중 370곳 정도만 영업을 하는 상태다.
인근 상가인 ‘굿모닝시티’ 등은 공실률이 80%에 달한다. 지하 7층~지상 16층 규모 굿모닝시티는 1년 전 모든 점포가 1층으로 내려오면서 현재는 1층만 점포 운영을 하고 있다.

매출 감소로 관리비를 내지 못하는 상인이 늘면서 상가 정문에는 2억원이 넘는 전기 요금 미납으로 인해 전기 공급 정지를 예고하는 안내문이 붙었다. 굿모닝시티’ 상가 주인 A씨는 “매출이 거의 없다 보니 관리비 30만원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인들이 많다”라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으로 손님이 급격하게 줄면서 쇠락했던 동대문 상권이 여전히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636만명을 넘기면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93%까지 회복했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이 팝업 스토어나 트렌디한 상권이 형성된 성수·한남·홍대 등으로 몰리면서 쇼핑을 위해 동대문 상가를 찾는 수요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동대문 집합상가 공실률은 11.9%에 달한다. 전국 공실률 10.9%, 서울 공실률 9%보다 높은 수준이다.
수요가 줄면서 상가 수도 급감하는 추세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중구 관광특구 내 위치한 의류 소매점은 2020년 1만2711개다. 지난해 들어서는 약 2700개의 점포가 문을 닫으면서 1만30개 정도로 줄었다. 올해 들어 경기가 더욱 위축된 점을 감안하면 1만개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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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큰 손 떠난 동대문…서울시 마스터플랜으로 살아날까
시장을 지탱하던 이른바 ‘큰 손’인 중국인 관광객이 발길을 끊었다는 점도 상권에 직격탄이 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위 ‘알테쉬(알리·테무·쉬인)’로 부르는 중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초저가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동대문 집합 상가를 찾는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었다.
한 상권 전문가는 “예전에는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한국산 제품을 찾는 중국 도매상이 많았지만, 최근 온라인 기반 이커머스의 등장으로 가격과 질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상품 경쟁력을 잃었다는 점이 상권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동대문 상가를 중심으로 한 상권의 회복이 불투명하자 서울시는 이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일대 상권을 재정비하고 신사업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마스터플랜을 내놨다. 정비사업을 통해 상권을 다시 활성화하고 녹지 공간을 함께 확충해 동대문 일대를 도심권 최대 랜드마크로 탈바꿈하겠다는 구상이다. /mjba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