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5.02.13 06:00
시중은행 판매 펀드, 이달 기한이익상실(EOD)
“고객 손실금 확인 요구에 묵묵부답”
“금감원도 관리 부실 책임 피할 수 없어”
“고객 손실금 확인 요구에 묵묵부답”
“금감원도 관리 부실 책임 피할 수 없어”

[땅집고] “제 2금융권도 아니고 KB국민은행에서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판매하나요? 판매사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KB국민은행, 운용사도 국내 최대 부동산 펀드 회사 이지스자산운용이라고 해서 믿고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노후 자금 용도로 모은 1억원이 0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고객의 소중한 돈은 이렇게 날려먹고 자기들은 성과급 잔치를 하더군요. 억장이 무너집니다.” (KB국민은행이 판매한 ‘이지스리테일부동산투자신탁194호’ 펀드 투자자)

12일 오전 서울 광진구 지하철 2·7호선 건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건대 중국음식문화거리 방면으로 100m쯤 걸어가니 작은 상가들 사이에 높게 뻗어 올라간 고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 외벽에는 영화관 CGV 간판이 걸려 있었고, 여러 상점 이름이 적힌 간판이 붙어있었다. 하지만 건물은 외부에서 보기에도 내부가 텅 비어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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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영화관 CGV점이 입점한 ‘몰오브케이’. 2018년 지하 3층, 지상 4층에 대지면적 2983㎡, 연면적 1만3068㎡ 규모(3593평)로 들어섰다. 당시 맨 위층인 3~4층에는 영화관 CJ CGV를 중심으로 1~2층에 ABC마트 몰오브케이건대점, 다수 음식점, 편의시설들이 들어와 건물이 가게들로 꽉 찼다.

그러나 현재는 영화관과 지하층 헬스장, 렌터카·주차장을 제외하면 1~2층 전체가 텅 빈 상태로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운영 중인 시설인 CJ CGV 영화관에 들어가봤다. 내부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휑 했다. 오전 10시50분에 시작하는 한 영화는 153석 중 149석이 비어 있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2018년 596억원을 들여 이 건물을 매입했다. 그리고 이 건물을 자산으로 담은 ‘이지스리테일부동산투자신탁194호’ 펀드를 유치하고, 약 208억원 규모 모집 금액 완판에 성공했다. 판매사는 KB국민은행.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건대입구역 인근 상권이 침체해 자산 가치가 떨어지면서 현재 펀드 수익률은 설정 이후 -46.33%를 기록 중이다. 이달 들어선 대출 이자 미납하는 등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원금까지 휴지조각이 될 판이다.
■ 고객 원금 ‘208억원’ 휴지조각날 판… “세입자 꽉 찼던 건물,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최근 이지스자산운용은 몰오브케이를 자산으로 담고 있는 ‘이지스리테일부동산투자신탁 194호’ 펀드가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원금이 전액 손실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매입 자금은 펀드 설정액 208억원과 선·후순위 담보대출 361억원, 임대 보증금 26억원 등으로 조달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실이 늘면서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한 것이 기한이익상실의 사유로 풀이된다.

현재 이 펀드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판매사인 KB국민은행과 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에 투자원금 손실액을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두 금융사 모두 책임을 떠넘기면서 묵묵부답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후 사용할 노후 자금을 저축하기 위해 1억3000만원을 이 펀드에 투자했다는 A씨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투자 기간 총 5년으로 분배금을 포함해 총 투자 수익률은 6%대 쯤으로 제시받았지만 현재 원금이 아예 0원이 될 지경”이라며 “부동산은 실체가 있고 건물이라도 있으니 다른 주식이나 금융 상품보다 낫다고 봤고, 판매사나 운용사 모두 믿을만하다고 판단해 이 펀드에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무리 코로나로 침체했다고 하더라도 건물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임차인 100% 만실이던 건물이 펀드 만기 시점에 텅 빌 수가 있느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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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오브케이’는 총 29개의 임차인 중 15년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은 CJ CGV(총 면적의 33%)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임대기간 만료 시점이 2023년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시세보다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세입자들이 전부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건대입구역 주변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이 일대 비슷한 상가 10평을 기준으로 통상 임대 시세가 250만원이었다면, 몰오브케이는 팬데믹 이후 건대 상권이 침체했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크기 기준 350만원에서 400만원을 달라고 한 것으로 들었다”며 “임대료가 그렇게 비싼데 어느 임차인이 남아있겠나”라고 했다.
이 펀드는 1년에 2차례 분배금을 지급하는데 공실이 대량 발생한 2023년부터 분배금이 끊겼다.
A씨는 “2018년 가입 이후 6개월에 한 번씩 분배금을 받기로 했는데 3회차(2020년 상반기)까지만 정상적으로 들어오고 4회차(2020년 하반기~2022년 하반기)부터는 분배금이 3분의1토막이 나더니 이후 2023년 이후부터 분배금이 뚝 끊겼다”고 했다.
■ 투자자들 “국내 최고 은행·자산운용사라 해서 믿었다”
A씨는 “부동산 전세사기, 땅 사기가 많다고 하지만 KB국민은행이라고 하니까 믿었고 그렇게 큰 회사에서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권유할까 싶었다”며 “가입 당시 판매 직원으로부터 최악의 경우 원금 전액 손실될 수 있다는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KB국민은행 측에 입장과 해명을 요구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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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에겐 최근 시중은행의 높은 성과급 지급 소식도 속이 쓰리는 일이 됐다. A씨는 “최근에 시중은행이 성과급 잔치 벌인다는 보도가 나오던데 소중한 고객 돈은 이렇게 취급하면서 자기네들은 챙길 것을 다 챙긴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A씨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현재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A씨는 “시중은행이 판매한 부동산 펀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금융감독원의 감독 부실 책임도 있다고 판단된다”며 “이로 인해 투자 성향이 안정지향적인 은행 고객까지 피해를 보게 되었다면 금감원도 이에 대한 대책을 좀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rykimhp206@chosun.com
※금융사가 판매하고 운용한 부동산 펀드·리츠 상품으로 투자금 손실 피해를 입은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