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2.30 16:51 | 수정 : 2024.12.30 17:11
[땅집고] 시민운동가에서 공기업 수장 자리에 올라 화제를 모았던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의 3년 임기가 지난달 14일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서울시에서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주택 정책들을 펼쳤던 김 전 사장에 대한 업계 평가가 엇갈린다.
김 전 사장은 2021년 11월 15일 SH에 몸 담은 이후 임기 3년 동안 실험적인 주택 관련 정책을 내놓은 인물로 유명하다.
☞나에게 딱 맞는 아파트, AI가 찾아드립니다
먼저 취임 한 달 만에 건설업계에서 함구하던 아파트 분양원가 자료를 전면 공개하기 시작해 지난 20년간 SH가 공급해온 아파트 원가 베일을 벗겨 화제를 모았다. 기존 선분양제 대신 토지임대부 후분양제 방식을 적용하는 이른바 ‘반값 아파트’ 물량을 확보해,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도 3억~4억원대로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 분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김 전 사장이 제안한 정책들이 다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정부의 3기 신도시 개발 사업에 자본력을 갖춘 SH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논의 단계에서부터 반대에 부딪힌 것. 더불어 반값아파트가 서민들의 주거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비책이라고 주장하며 공급 확대를 주장했으나 지난 3년 동안 실제로 입주자를 모집한 단지는 단 4곳, 총 1623가구에 그쳐 물량이 역부족이었다. ▲고덕강일3단지 1차 500가구·2차 590가구 ▲마곡10-2단지 260가구 ▲마곡16단지 273가구 등이다.
김 전 사장은 사석에서도 “SH에서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발언하며 연임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으나 정작 신임 사장직 공모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내부에선 지방공기업 사장이 자리를 유지하려면 ▲경영성과 ▲경영평가 ▲업무성과 등 측면에서 높은 실적을 기록하거나 기존 대비 두드러지는 상승세를 보여야 하는데, 김 전 사장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김 전 사장이 지나치게 혁신적인 주택 정책들을 내세우면서 국토교통부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관련 기관들과 공개적으로 ‘맞짱’을 뜬 것이 그가 사장직 연임에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고 있다.
김 전 사장은 먼저 국토부와는 매입임대주택 사업 및 사전청약 제도를 두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국토부가 공공주택 공급 속도와 양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매입임대주택 카드를 꺼냈는데, 김 전 사장은 “매입임대주택은 민간 건설업자 배만 불리는 제도”라며 물량을 확보하는 데 소홀히했던 것. 더불어 국토부가 사전청약 제도가 허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중단을 선포한 반면, 김 전 사장은 SH를 통해 자체적으로 반값아파트 사전청약을 강행하면서 눈총을 사기도 했다.
☞아직도 발품파세요? AI가 찾아주는 나에게 딱 맞는 아파트
김 전 사장은 LH를 저격하는 발언을 하면서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현재 LH가 전국 곳곳 신도시 개발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임직원 신도시 땅 투기 사건과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 등을 일으킨 LH 대신 SH에도 개발 사업 주도권을 달라고 주장하는 등 공개적인 기싸움을 벌였다.
결국 지난 3년 동안 이어지던 김 전 사장의 혁명적(?)인 실험은 올해 11월 말을 내렸다. 그에 대한 평가는 주택업계의 돈키호테, 몽상가, 혁명가 등 찬반이 엇갈렸다.
김 사장 후임으로는 황상하 SH 기획경영본부장이 내정됐다. 황 내정자는 1990년 SH에 입사해 전략기획처장, 공유재산관리단장, 금융사업처장, 자산운용본부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SH 근무 이력이 상당한 데다 과거 2021년 김세용 전 SH 사장이 퇴임한 직후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경험도 있어, 그가 무리 없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