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2.09 15:48 | 수정 : 2024.12.10 09:44
[땅집고] 올 초 정부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6%로 끌어올렸다. 반도체 등 상반기 수출 회복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예측에서다. 부동산 경기 침체를 우려해 정부가 서민 대상 금융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지난 상반기 부동산 시장은 전국적으로 침체를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과 청약 경쟁률이 오르고, 침체했던 지방과 수도권 외곽 지역에선 미분양 물량이 다소 줄거나 매수세가 살아나는 등 훈풍이 불었다. 괴담처럼 떠돌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발 금융위기설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하반기 들어서면서 급반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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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에서 2.2%로, 내년 전망치를 2.1%에서 1.9%로 2년 연속 낮췄다. 석유 파동,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외부 충격 없이 2년 연속 경제성장률이 1%대로 전망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잠잠해졌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론이 되살아나고, 대형 건설사와 소속 그룹마저 유동성 문제로 부도설이 나돌았다. 지방에선 여전히 미분양으로 신음하는 건설 현장이 수두룩한 실정이며 문 닫은 건설사가 늘어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수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자동차 판매가 줄고 온라인 쇼핑도 성장세가 멈췄다. 한국만 경제가 뒷걸음 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올 초만 해도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향해 질주할 것 같았던 한국 경제가 갑자기 위기론에 빠진 이유는 뭘까.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영향도 있지만, 서울 강남권 집값을 잡겠다는 금융감독원의 선무당 대출 규제와 한은의 금리인하 지연이 한 몫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 등 주요 국가의 집값이 강세이지만, 대출 규제 등 집값 잡는 정책을 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여기다가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해제 등이 이어지면서 주가 폭락, 경제 정책 실종으로 한국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견디며 본격적인 성장세에 접어들줄 알았던 한국 경제는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일본식 장기침체로 이어질 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 한은, 향후 2년간 1%대 성장 전망 쇼크…‘강남 집값’만 바라보다 경제 말아먹나
지난달 28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깜짝 인하했다. 이 총재는 “성장의 하방 리스크를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미국 신정부의 경제 정책 향방에 따른 경기와 인플레이션의 불확실성이 증대됐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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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11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에서 2.2%로, 내년 전망치를 2.1%에서 1.9%로 낮췄다. 2026년에도 글로벌 성장세 둔화, 미국의 관세인상 영향 본격화 등으로 성장률이 1.8%로 소폭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건설부문에 대해서 부진을 예측했다. 건설 투자 부문이 올해와 내년 각각 -1.3% 및 -1.3%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 투자는 그간의 수주·착공 위축 영향으로 내년에도 부진할 것이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하반기 건설 경기가 침체할 것으로 예측했다면, 금융 당국의 금리 인하 및 부양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강남 아파트값 흐름에 따라 규제를 풀었다 옥죄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반까지만 해도 신생아특례대출 등 대규모 정책 금융을 공급했고, 대환대출 비교 서비스 상품을 출시하며 시중은행에 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을 보냈다. 실제로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해보다 낮아지면서 수도권 일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7월 도입 예정이었던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는 갑자기 9월로 미루면서 8월쯤 주담대 막차 수요를 자극했다.
이 기간에 서울과 강남 아파트 매수세가 커지긴 했다. 하지만 전국 부동산 시장에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지방 악성 미분양 물량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집값 변동률도 작년과 비슷했다.
강남 일부 지역에서 신고가를 기록한 아파트가 늘자, 금융 당국은 9월부터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 나선다면서 대출을 막기 시작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시중은행을 압박했고, 서민 대출인 디딤돌대출 등을 비롯해 전체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에 나섰다.
특히 디딤돌대출에서 입주 아파트에 적용하는 후취담보 조건 대출을 전격 제한하면서 자금 조달 길이 막힌 예비 입주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그러다 이 달들어선 금융당국은 거시 건전성 규제 속도 조절에 나선다면서 전세대출의 한도를 축소하는 DSR 적용 조치를 내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역대급 오락가락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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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렁 빠져드는 지방 부동산…문 닫은 건설사 2000곳 폭증
정부의 규제에도 강남 등 서울 핵심지 집값은 계속 고공행진하고, 지속적인 침체에 빠졌던 지방 부동산 시장은 더욱 더 얼어붙고 있다.
3일 한국부동산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1.23% 상승, 지방은 -0.15%로 대조를 이뤘다. 서울에서도 강남3구인 서초구는 2.36%, 강남구는 2.28%로 높았다.
10월 기준 전국 악성 미분양은 1만807가구로 전달보다 6.1% 증가했다. 이는 2020년 7월 1만8560가구 이후 4년3개월만에 최대치다. 대부분 지방에서 늘었다.
지난해부터 시장이 우려한 부동산PF 위기론은 다시 점화됐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8위 대기업 롯데건설은 올해 분양한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저조했다. 대부분 지방 사업장으로 기존 현장에는 공사 미수금이 지난해말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문 닫은 건설사도 늘어났다. 국토교통부 건설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394곳, 전문건설사는 1710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0.85%, 8.9% 증가했다.
■ 선무당의 칼춤이 초래한 20년 일본의 장기침체
올해 주택가격이 오른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글로벌 주택시장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분석할 정도로, 주요 국가의 주택 가격이 오르고 있다. 금리인하 기대감과 주택공급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집값이 오른다고 금리인하를 주저하거나 대출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 연준의 파월 의장은 9월 금리를 낮추면서 “연준이 미국 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인플레이션을 전반적으로 낮추고 금리를 정상화하여 차입 비용을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인하로 주택가격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궁극적으로 “공급 문제는 시장과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반면 한은은 주택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이유로, 금리인하를 11월까지 미루면서 내수침체를 가속화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집값 잡겠다고 대출을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 정도이다. 1990년대 일본이 집값을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고 대출 규제를 하면서 집값 폭락과 기업 부도로 이어지면서 20년 경기침체에 빠졌다. 집값을 잡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대출을 규제하는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경제 상식이지만, 집값 잡겠다고 대출 규제 카드를 함부로 휘두르는 나라는 없다. 대출규제 카드를 선무당 칼춤 추듯 휘두르면 나라가 망하는 수준까지 경제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2021년 집값 잡겠다고 대출 총량제를 도입했지만, 개발업체의 연쇄 부도, 집값 급락 등으로 극심히 경기침체에 빠졌다. 이제 집값 부양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논리를 무시한 정책은 엄청난 재앙이 된다. 한국도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낙관론으로 시작한 2024년 한국 경제는 정부 주도의 경제 자해극이 끝내 비상 계염령 선포로 이어지면서 거의 전쟁 국가 수준의 경제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다만 조기에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정책을 정상화한다면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IMF외환위기, 리먼쇼크 등 각종 위기를 발전의 디딤돌로 삼아 도약해온 나라가 한국이다. 위기 때문마다 “한국 경제는 끝났기 때문에 집값은 장기 침체할 것”이라는 식의 주술적 집값 폭락론이 유행했지만, 모두 사이비 예언으로 끝났다. 집값은 투기의 결과가 아니라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오른다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이미 증명됐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집값이 일본식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조정후 다시 오를 것인가는 이번 위기의 극복 여부에 달려있다.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마이너스 성장국가로 전락한다면 일본식 집값 폭락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반면에 위기를 조기에 극복한다면 공급 물량 부족,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론으로 집값이 강한 상승세로 다시 돌아설 수 있다.
/rykimhp2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