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11.14 10:28 | 수정 : 2024.11.14 14:24
[땅집고] 한때 기업 가치가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으나 부동산 경기 악화로 문을 닫은 프롭테크 기업 ‘어반베이스’가 과거 투자금을 건넸던 신한캐피탈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신한캐피탈이 어반베이스 대표 개인이 경영 악화에 대한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원금 5억원과 이자 7억원을 합한 총 12억원을 연복리 15% 조건으로 갚으라는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어반베이스, 레고랜드 사태로 폐업…투자금 회수 소송까지
■어반베이스, 레고랜드 사태로 폐업…투자금 회수 소송까지
2014년 설립한 어반베이스는 실내 공간 정보를 3D로 변환해 개인 맞춤형 인테리어 시뮬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했던 프롭테크 기업이다. 기술력을 인정 받아 총 18개 투자사로부터 25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유치했으며 기술특례상장까지 추진했다.
하지만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PF 시장을 시작으로 분양·인테리어 등 부동산 관련 업계가 전반적인 불황에 빠지자 어반베이스 역시 내부 사정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경기 침체로 스타트업 투자 시장도 얼어붙었다. 이런 대외적 상황에서 기술특례상장을 위해 매출 규모를 키워나가면서 비용을 썼던 어반베이스는 추가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경영난에 빠졌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매출이 10억원대에 그쳤던 반면, 적자는 ▲2020년 14억원 ▲2021년 24억원 ▲2022년 82억원으로 점점 불어났던 것. 결국 어반베이스는 2023년 12월 법원에 회생신청을 한 뒤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매각 과정에서 신한캐피탈로부터 2017년 5억원 규모 투자를 받았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올해 2월 신한캐피탈 측이 하진우 대표 개인에게 원금 5억원에 이자 7억원을 더한 12억원을 반환하라는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 투자 원금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인 데다, 이자율은 연 복리 15%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는 “당시 회사 인수 의지를 밝힌 기업 중에선 누구나 사명을 들으면 알 만한 대형건설사도 있었고, 우리 회사의 기술력을 접목하면 시너지를 낼 만한 인테리어 기업도 있었다”면서 “회사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형 캐피탈사와 소송전까지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 기업들이 인수를 망설이자 신한캐피탈 측에 일단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폐업 수순을 밟게 됐다”고 했다.
■계약서 ‘연대 책임’이 발목 잡아…VC업계 관행 역행
신한캐피탈의 투자금 반환 요구는 2017년 체결했던 투자계약서에 근거한 것이다. 당시 계약서에 ‘회사의 정상적인 사업추진이 불가능해진 경우 판단될 경우 회사에 기한 전 투자금 상환 청구를 할 수 있다’, ‘회사는 투자자에게 투자원금 및 투자원금에 연 복리 15%를 가산한 금액을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해관계인(대표이사 개인)은 회사와 연대하여 책임을 부담한다’는 등 조항이 있었던 것.
하지만 VC업계 관계자들은 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한 뒤 횡령 등 범죄나 방만 경영이 벌어진 것이 아닌 이상, 투자사가 대표 개인에게 연대 책임을 물으며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말 그대로 미래 가치를 기대하는 신생 업체에 ‘투자’한 것이지, ‘대출’ 해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한캐피탈과 같은 날 똑같은 조건으로 투자 계약을 체결했던 산은캐피탈은 어반베이스에 투자금을 토해내라고 요구하지 않기도 했다.
통상 스타트업은 상환전환우선주(RCPS), 즉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과 만기시 투자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환권’ 두 가지 권리가 있는 주식 형태로 투자금을 유치한다. 이 중 상환권 때문에 채권 성격이 있긴 하지만, 스타트업이 경영난·폐업으로 배당 가능한 이익이 없는 경우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투자 수순을 종료한다. 어반베이스 역시 이 RCPS 형태로 신한캐피탈 투자금을 받았다.
더군다나 2018년부터는 중소기업진흥공단·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 국책기관에선 스타트업에 투자·대출해줄 경우 창업자 연대 보증을 정책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2023년 4월에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특법)에도 연대 책임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하 대표는 “과거 신한캐피탈 측에 투자계약서상 ‘연대하여 책임진다’는 항목을 문구를 삭제하고 싶다고 하자, 담당자가 ‘사내 표준 계약서일 뿐이고 앞으로 연대 보증이 다 철폐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전해 믿고 계약을 진행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현행 제도상 신한캐피탈은 벤처기업에 투자하더라도 벤특법은 적용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한캐피탈의 경우 벤처투자조합이 아닌 신기술사업금융업자로로서 여신전문금융업법 제 41조에 따른 금융업자기 때문이다. 일종의 법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앞으로 국내 스타트업 시장 쪼그라드나…소송 결과에 귀추
현재 신한캐피탈은 투자금 상환 능력이 없는 하 대표와 그의 배우자가 공동명의로 보유한 주택에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다. 만약 하 대표가 투자금 반환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이 집은 경매로 넘어간다. 인근 시세를 고려했을 때 낙찰 가격이 12억원을 밑돌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 하 대표가 개인파산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이번 신한캐피탈과 어반베이스의 소송전 결과에 따라 업계 상황이 크게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신한캐피탈이 승소한다면 앞으로 고금리 상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투자를 받으려는 창업자가 크게 줄면서 스타트업마다 성장 가도가 막힐 것이란 설명이다. 더불어 이런 분위기가 고착화될 경우 개인이 창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감수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선례 때문에 업계 활력이 크게 떨어지고, 결국 국가 경쟁력 저하로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일각에서는 신한캐피탈이 부동산PF와 부실채권 영향으로 실적 악화를 겪고 있어 그동안 업계 관행을 따랐던 VC등 다른 사업부를 옥죄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실제로 이달 신한금융그룹이 발표한 올해 3분기 실적에 따르면, 신한캐피탈의 순익은 152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9% 감소했다. 더불어 신한캐피탈의 전체 영업자산 중 부동산 PF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11.8%에서 2023년 16.2%로 확대되면서, 올해 공시한 부실채권 발생 건수가 20건으로 총 1758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한캐피탈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내부에서 스타트업에 투자금을 상환하라고 청구한 사례가 거의 없긴 하다”면서도 “다만 어반베이스의 경우 투자계약서가 연대 책임 조항이 있던 과거 2017년 체결한 것이라 내부 규정 및 계약서에 근거해 소송을 진행하게 됐고, 현재까지 소송 취하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통상 창업자들이 파산하는 경우 자산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반면, 어반베이스 대표는 수도권에 주택을 보유해 개인 자산이 있는 상황이라 약정상 직원들이 투자금 회수 절차를 밟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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