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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초래한 은행장의 무모한 '부동산 버블 퇴치론'

    입력 : 2024.11.07 09:57 | 수정 : 2024.11.07 17:12

    [땅집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부동산버블 퇴치사를 자임한 듯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주택가격 안정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집값을 잡겠다고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서울대 등 명문대학에 대해 지역별 비례로 학생을 선발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리츠를 통해 가계부채를 낮추는 방안도 제시했다.

    [땅집고] 최근 주택관련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조선DB

    이 총재의 말을 듣다보면 한국이 ‘주택지옥’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미국, 영국 등 주요국가들의 집값도 폭등했고 대도시 서민주거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한국만 유독 투기가 심해서 집값이 치솟는다는 것은 사이비 좌파들의 흘러간 노래이다. 아무리 주택문제가 심각해도 중앙은행장이 “이런 정책을 채택하면 집값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은 하지 않는다.

    포퓰리즘 정치인이나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아닌 이상 주택가격이라는 경제현상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을 제시할 수는 없다.

    차근차근 정책적 대안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그린벨트를 만든 영국도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미국은 건축 규제완화를 통한 주택공급 확대를 정책으로 선택했다. 서민들이 집을 쉽게 살 수 있도록 주택금융 제도를 정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값의 결정요인은 주택 수요와 공급이며, 주택수요는 금리, 경제성장률, 인구 구조에 의해 결정되고, 주택공급은 택지공급, 인건비, 원자재가격, 파이낸싱에 따라 결정된다.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은 없다. 대선 때마다 수많은 공약이 쏟아졌지만, 주택문제가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이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중국 공산당은 집값을 단박에 잡겠다고 미친 칼춤을 춘다.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 정책을 도입해서 집값을 잡는데 성공했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집값이 폭락하면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자 정권 붕괴 우려까지 나왔다. 그래서 방향을 정반대로 틀어 집값 살리기에 나섰다. 집값은 경제 전체와 연결돼 있고, 인위적 집값 폭락은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는 많다.

    부동산 버블 퇴치사로 명성을 떨친 사람이 일본은행 26대 총재 미에노 야스시(三重野康)이다. 1989년 총재에 취임한 그에게 쏠린 국민의 간절한 원망(願望)은 '버블 퇴치'였다.

    당시 5년 사이에 주가는 3배, 도시 땅값은 4배 뜀박질했다. 서민들이 "영영 집을 사지 못하는 것 아닌가" , "부동산 가진 자들만 더 부자 되는 불합리한 세상" 등 분노를 쏟아냈다. 미에노 총재는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어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자산 가격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정의의 칼'을 휘둘렀다.

    그가 꺼낸 칼은 금리 인상 등 금융 긴축이었다. 취임하자마자 정책 금리를 3.75%에서 4.25%로 올렸고 1년도 되지 않아 6%까지 올렸다.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고, 국민은 환호했다. 일본 정부의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까지 가세, 부동산 가격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서민의 영웅이라는 대한 환호는 잠깐이었다. 일본의 버블이 꺼지고 부동산 담보대출이 부실 채권으로 전락하면서 은행과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고 실업자가 속출했다. 당시 재계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요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버블의 완전한 퇴치'를 요구했고 미에노 총재 역시 "버블이 또 생길 수 있다"며 완강하게 버텼다. 그 사이 일본은 20년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미에노 총재는 '장기 불황의 원흉'으로 전락했다. 서민을 위한 미에노 총재의 신념이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서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주택가격을 잡기위해 금리를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지를 보여주는 교훈이 됐다.

    일본의 실패가 교훈이 됐을까. 아무리 주택가격이 올라도 미에노처럼 중앙은행 총재들이 나서지 않았다. 미국의 제롬 파월 연방 준비 은행 의장은 최근 금리인하와 집값 문제와 관련, “미국 주택 시장의 높은 가격 뒤에 있는 진짜 문제는 공급 부족이며, 이는 연준이 실제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이 미국 가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인플레이션을 전반적으로 낮추고” 금리를 정상화하여 차입 비용을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공급 문제는 시장과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파월이 이창용 총재보다 지식이 부족해서, 용기가 없어서, 철학이 없어서, 소신이 부족해서, 권한이 작아서, 인품이 모자라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일까?

    최근 이 총재의 발언 강도가 높아지면서 ‘오지랖 한은 총재’를 넘어 대선 출마를 하려는 것 아니냐, 사이비 경제학에 빠진 것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온다.

    이 총재가 최소한 그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제롬 파월이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일본은행 미에노 야스시 총재의 오류, 중국 공산당의 주택정책, 영국의 그린벨트 해제 등 전세계 주택 시장을 한번 살펴 본 후 소신을 폈으면 한다. /차학봉 땅집고 기자hbc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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