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9.18 07:30
[땅집고]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반가량 달려 도착한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반달섬. 시화호를 끼고 2500여 호실의 국내 최대 규모의 생활형숙박시설이 공사 중입니다. 내년 초 준공을 앞둔 ‘힐스테이트 라군인테라스1차’인데요.
전용면적 97㎡~142㎡, 8개 동, 2554호실 규모입니다. 저층부터 최고 49층까지 전 호실이 서해안이 보이는 테라스를 갖춘 게 특징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객실을 보유한 호텔인 제주하얏트(1600호실)보다 객실 수가 많지만, 2020년 생숙이 주택 대체재로 각광받으면서 완판했습니다.
그러다 정부가 생숙을 주택으로 쓸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하면서 분양가보다 가격이 떨어진 이른바 ‘마이너스 프리미엄’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 단지 전용 114㎡ 매매 매물은 분양가 5억5500만원보다 1억 가까이(9950만원) 떨어진 가격인 4억5550만원에 나와있습니다.
■ 1차 완판 이후 분양한 2차, 분양률 낮아 중도금 불발 위기
이 단지에서 약 660m 떨어진 ‘힐스테이트 라군인테라스2차’는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전용면적 102㎡~150㎡, 5개동, 1191호실 규모입니다. 2022년 4월 분양 이후 같은해 말 중도금 대출을 일으킬 계획이었는데, 분양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낮은 분양률과 이행강제금 부과 같은 생숙 규제로 인해 중도금을 빌려줄 은행을 찾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생숙을 주거용으로 쓰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고 밝히면서 수요가 사라지자 금융권도 생숙을 위험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숙은 주거용으로 살지도 못하고 팔기도 어려운 ‘유령 건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A부동산 대표는 “힐스테이트 라군인테라스 2차 분양계약서를 보면 2022년 4월 분양하고 같은 해 12월에 중도금 대출 실행을 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못했다”며 “생숙이다보니 은행을 못 찾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 ‘생숙’ 폭탄, 시행사에서 시공사로 넘어가나
힐스테이트 라군인테라스2차 분양률은 저조한 편입니다. 시행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이 단지 분양률은 40.6%입니다. 시행사는 생숙 총 사업비 1조5000억원을 PF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로 5500억원, 계약금과 중도금을 더한 분양 수입 9500억원으로 조달하려 했는데요. 사업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계약금을 포기하고 이탈하는 수분양자가 속출하면서 시공사인 현대건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단지는 계약금 1000만원 정액제와 중도금 무이자 같은 혜택을 내세우고 있지만, 산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분양대행사는 사업장 인근에 결국 2년째 모델하우스를 운영 중입니다. 계약률을 높이기 위해 편법을 통해 생숙을 주거용으로 쓸 수 있다고 홍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힐스테이트라군인테라스2차’ 분양대행사 직원은 “이렇게 큰 건물을 숙박시설로 돌리기 어렵다”며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 땅이라서 ‘생숙’ 형태를 빌렸을 뿐, 분양받는 사람은 모두 실거주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이행강제금 등 논란이 있지만, 운영사를 끼면 문제가 없다”며 “(집 주인이) 장기숙박형태로 거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법 소급 적용이 火 키워’…줄피해 예견된 일
분양한 생숙의 경우 수분양자가 분양대금을 떠안게 됐는데요. 수분양자는 물론 이 단지처럼 분양을 마치지 못한 사업장에서는 시행사와 시공사도 생숙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생숙 폭탄’이 건설업계 전반으로 퍼지는 양상입니다.
업계에서는 생숙 규제로 인한 피해가 수분양자를 넘어 시행사와 건설사로 넘어오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정부가 2021년 10월부터 생숙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생숙 규제를 가했을 당시엔 이미 전국에서 생숙 인허가가 진행된 뒤였기 때문입니다. 법을 소급 적용한 만큼,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국제테마파크와 수변공원을 품은 ‘복합 레저 관광도시’를 표방했던 안산 반달섬에도 생숙 7000여개 호실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한국레지던스연합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준공을 앞둔 생숙 수분양자들이 중도금을 내지 않고 분양계약 취소를 요구하며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1000건을 훌쩍 넘겼습니다.
관광상품으로 등장한 생숙은 주택 가격이 급등할 당시 청약 통장이 필요없고, 종합부동산세 같은 주택 세금을 내지 않는 비규제 상품인 점을 기반해 투자자와 수요자들이 대거 몰렸는데요. 국토부는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을 할 경우 주거 사용이 가능하다고 퇴로를 열어줬지만, 용도 변경에 성공한 사례는 전체의 1% 수준입니다.
사업 추진을 위해 대출을 일으켰던 시행사는 사업성 저하로 대출금을 떠안게 됐고, 시공사는 건물을 다 짓고도 공사비를 못 받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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