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4.09.08 07:30
[땅집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고속철도를 구축하는 제안이 다시 한번 제시됐다. 그동안 반대 목소리가 컸던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거론됐다. 다. 10년 넘게 제2공항 건설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해저 고속철도까지 수면 위로 부상하면 또 다른 논쟁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도의원들은 지난달 23일 제주와 서울을 연결하는 철도망 구축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해저터널’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제주-육지 간 교통수단은 항공과 일부 항만에 의존하고 있다. 기상 영향에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최된 ‘해저터널’ 건설 토론회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2015년 개통한 KTX 호남선은 서울에서 목포까지 370.6km를 연결했다. 2011년 국토부 타당성 - 조사에서 제주-서울 해저터널은 목포에서 제주까지 162.4km 구간을 잇는 최단 거리 노선이 제시된 바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이준 실장은 주제 발표를 통해 “항공기에 의존한 이동으로 기상상황에 의한 항공기 지연·결항, 제주공항으로의 수요집중으로 인한 항공 좌석난과 공항 주차난, 긴급 이송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 등 해외의 해저터널 성공 사례를 설명하면서 “중앙정부 추진 의지와 별개로 지자체 추진 의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선 제주가 국제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는 데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해저터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제주가 섬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2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 투입이 필요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크다. 강호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대표는 “해저터널은 온갖 용역에서 최소 14조원, 많으면 20조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며 “과연 국가재정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했다. 국가재정 한계로 민간자본을 끌어올 경우 SOC(사회간접자본) 민간투자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게다가 해저터널이 만들어지고 항공 이용률이 급격하게 떨어질 경우 제2공항 신설 주장도 힘을 잃게 된다.
토론회에 참석한 백승근 전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 위원장은 “20조원이 넘어가는 대규모 투자사업을 단순히 철도가 없으니, 철도를 연결하겠다는 방식으로는 투자의사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전라남도 차원에서는 고속철도를 제주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러 번 나왔다. 제주도의회 차원에서는 이번에 처음으로 거론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전남과 제주 간 의견이 엇갈린다. 전남도는 2007년부터 해저터널 관련 조사 결과들을 활용해 전남을 거쳐 가는 제주~서울 해저 고속철도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제주도는 제2공항 건설 등에 정책 우선순위를 둬 왔다. 제주도 내에서는 해저터널이 뚫리면 제주가 80년 전처럼 전라도의 하부구조가 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제주에서는 2007년 당시 김태환 제주지사가 전남도와 함께 공동건의문을 채택하면서 공식화했지만 신공항 건설 이슈 등에 밀려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제주 철도 구축을 언급한 바 있다.
김의근 제주도관광학회장은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앞둔 시점에서 서울~제주 고속철도 구축 논의로 10년 넘게 이어진 제2공항 찬반 갈등이 또 다른 갈등의 시발점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했다. /박기홍 땅집고 기자 hong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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